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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상징, 아웅 산 수지 민주화운동의 상징, 아웅 산 수지 아웅 산 수지는 1945년 '버마 독립의 아버지 '인 아웅 산 장군의 딸로 태어 났지만 그녀가 두 살 때 아버지는 정적에게 암살을 당했다. 1960년 어머니가 인도 대사로 임명되자 함께 인도에서 생활을 하다가, 1964년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미국 뉴욕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후 유엔 직원 등의 일을 거쳐 1972년 영국인 남성 마이클 앨리스와 결혼한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마이클은 그 뒤 옥스퍼드 대학교를 거점으로 티베트와 부탄, 히말라야의 연구자로 대성한다. 아웅 산 수지는 마이클과의 사이에 아이 둘을 낳았고, 주부로서 육아에 쫓기면서 대학에서 연구를 재개해 버마문학 등을 테마로 한 연구논문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러던 1988년..
인권운동의 전설, 소저너 트루스 인권운동의 전설, 소저너 트루스 흑인노예제도 폐지론자, 여성 인권 운동가인 그녀의 본명은 이사벨라 바움프리 ,소저너 투루스는 ' 진리를 전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녀가 1843년부터 스스로 만들어 사용한 이름이다. 그녀는 뉴욕의 한 장군 집안에서 부리는 노예 가족으로 태어났다. 열한 살 때 다른 백인의 노예로 팔려간 후 몇 번 주인이 바뀌었다. 노예해방선언이 있기 1년 전에 소유주가 트루스에게 "네가 충실하게 일한다면 자유를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녀는 그 약속을 믿고 열심히 일했지만 일의 능률이 떨어진 다는 등 핑계를 대었다. 1826년 말, 트루스는 자유를 찾아 탈출했다. 그 후 그녀는 노예로부터 해방이 되었고 불법적으로 남부에 노예로 팔려간 아들을 찾기 위해 백인 남자와 법정투쟁을 하여 ..
조선의 예술을 사랑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 조선의 예술을 사랑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 '민예운동의 창시자'로서' 로서 '공예운동의 아버지'로 또 '조선의 벗'으로 불리는 예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 그는 1889년 도쿄에서 해군소장인 아버지 야나기 나라요시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해군부 수로국의 초대 국장과 귀족원 의원을 역임했고, 외조부는 해군 대장과 해군 장관을 역임하는 등 야나기는 명문가의 후손으로 자랐다. 그는 일곱 살에 명문가의 자제들이 다니는 학습원 초등과에 입학, 중등과와 고등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도쿄 제국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재학 중 친구들과 함께 인도주의를 표방한 문예잡지(시라카바)를 창간했다. 1913년 도쿄 제국 대학교를 졸업, 유럽 유학 후인 1919년 도요 대학교의 교수를 시작으로 메이지 대학교..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동양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인도의 시성'으로 잘 알려진 사상가이자 시인,소설가, 작곡가 , 교육자였던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그는 1861년 벵골 명문가의 '위대한 성자'라고 불리는 데벤드 라나트의 열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 시절, 타고난 자연인이었던 타고르는 영국식의 주입 교육에 적응을 못해 세 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녔지만 졸업장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타고르는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와 함께 인도의 각지를 여행하며 전기, 역사, 천문학, 현대 과학, 산스크리트어를 섭렵했고, 특히 고대 인도의 시인 카리다사의 시를 연구했다. 그는 일찍 시를 쓰기 시작했고, 열여섯 살때 첫 시집 (들꽃)을 내었으며 다음해인 1877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거..
빈민국을 '희망의 대국'으로 만든 룰라 다 실바 빈민국을 '희망의 대국'으로 만든 룰라 다 실바 브라질 하면 아마존 밀림, 축구, 삼바 축제가 떠오른다. 그러나 브라질 국민들을 '룰라 대통령'을 떠올린다.'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을 떠올린다.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오바마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하늘이 보내준 지도자' 등 룰라 대통령에 대한 찬사가 많지만,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룰라는 1945년 브라질 가라늉스 농촌의 빈민가에서 여덟 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대도시로 돈벌이를 나갔다. 룰라는 열 살때 어머니를 따라 상파울루 근교로 이사했으며, 어릴 때부터 구두닦이를 하며 집안 살림을 도왔다. 열여덟 살에 국립직업훈련소를 마치고 나사와 볼트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노동..
노조 출신 대통령 레흐 바웬사 노조 출신 대통령 레흐 바웬사 노조운동가로 '폴란드를 민주화시킨 주역'이며 노조 지도자로 최초의 노벨평화상을 받고 대통령이 된 인물 레흐 바웬사. 그는 1943년, 폴란드 부오추아베크 근처인 포포보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나치 독재의 점령 시기에 죽었고 그는 초등학교를 나와 집에서 농사를 거들다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집을 뛰쳐나온다.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그다니스크에서 레닌조선소 전기공이 되었다. 1970년 12월 식량폭동 당시 바웬사는 거리시위를 하던 사람들이 경찰의 총에 맞고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고,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민주적인 노동조합 결성을 결심하고 노동운동에 가담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요구조건을 조선소 측에 제시했지만 노동운동 탄압으로 4년 간 실..
소련의 최초이자 마지막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의 최초이자 마지막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냉전시대를 끝내고 러시아의 민주화에 기여한 개혁과 개방의 주창자 고르바초프. 그는 1931년, 러시아 스타브로폴 지방 프리블례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 모스크바 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 1952년 공산당에 입당해 교내 콤소몰(공산주의청년동맹)의 조직원으로 활약했다. 5년 간의 대학 과정을 마치고 1955년 고향 스타브로폴로 돌아와 콤소몰 서기 1968년 지구당 제 1서기를 거쳐 1971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 1978년 농업담당 당서기, 1980년 정치국원으로 선출되었고, 안드로포프가 집권하자 그의 후계자로 지목되었으며 체르넨코의 집권기간 중에도 2인자의 위치를 굳혔다. 1985년 3월 체르넨코의 사망으로 당 서기장에 선출되자 페레스트로이카..
환상의 대통령, 휴이 롱 환상의 대통령, 휴이 롱 통칭 '킹 피쉬'라는 닉네임으로 잘 알려진 휴이 피어스 롱 Huey Pierce Long은 1893년 8월 30일 루이지애나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환경을 극복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지방을 순회하는 유랑극단의 세일즈맨으로 돈을 벌어 오클라호마 뱁티스트 대학교에 들어가 법률을 배웠다. 1915년, 스물두 살의 나이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정치에 관심을 갖고 대기업 공격으로 민중의 인기를 얻었다. 1924년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경험 부족으로 낙선하고, 그 후 4년 동안 정력적으로 유세를 다니면서 교묘한 연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1928년에 최연소로 당선됐다. 주지사 시절 빈곤층의 복지를 위한 무상 교과서법, 주립대학 설립, 소득세, 상속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