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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적의 난 홍건적의 난 홍건적의 난은 중국 중원에서 이민족의 왕조인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한족의 왕조를 다시 세우는 계기를 만든 종교적 농민 반란이다. 허베이 성 영평에서 한산동과 유복통 등이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중심 세력은 백련 및 미륵교도이다. 이들은 붉은 천을 머리에 둘러 동지의 표지로 삼았기 때문에 홍건적이라 하였다. 13세기 전반 몽골 족으로 이루어진 원나라에서 한족들은 심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1351년 황허 강 보수를 위해 많은 노동력이 징발되면서 민심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를 틈타 비밀결사단체인 백련교를 등에 업은 한산동이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자칭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중국 각지를 점령해나갔다. 그후 한산동이 관군에게 붙잡히자, 그의 부하 유복통이 한산동의 아들 한림아를 받들어 ..
일본이 사랑하는 왕자 쇼토쿠 태자 일본이 사랑하는 왕자 쇼토쿠 태자 일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 인물 쇼토쿠 태자. 그는 일본 불교의 부흥을 이끌었고, 최최의 관료 제도인 12관위계제를 만들었으며, 최초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17개조의 헌법을 만드는 등 고대 일본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사람이다. 또한 수나라에 견수사등을 파견하여 일본의 대외 관계를 정립하는 등 일본의 국가체계를 잡아나갔다. 쇼토쿠 태자는 소가 가문 출신으로 574년 요메이 천황의 둘째 황자로 태어났다. 당시 일본은 중국으로 부터 건너온 불교를 처음으로 공식 승인했고(538년), 일본 내에서는 불교와 함께 건너온 발전된 외국 문명을 배우려는 이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건축 기술, 토지를 개량하는 신기술, 의료 기술 등이 불교와 함께 일본에 전해졌고 그런 선진 ..
이슬람교의 중심 코란은 무엇인가 이슬람교의 중심 코란은 무엇인가 코란(koran)은 이슬람교의 중심으로 가장 중요한 성전이라 할수 있다. 이슬람교도들은 하늘나라에 아랍어로 쓰인 하느님(알라)의 계시가 영원한 돌로 만든 판에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알라는 모세,다윗, 예수님, 그리고 무함마드 등 선지자들을 통해 자신의 말을 전했다. 초기에 무함마드는 자신이 단지 아랍 세계만을 위해서 알라의 부름을 받은 선지자라고 믿었다. 그러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자 모세, 다윗, 예수님이 받았던 성경의 계시들이 성경에서 변조되었으며 따라서 오직 코란만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종교학자들은 (코란)의 내용 자체는 실상 무함마드의 종교적 체험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무함마드가 종교를 창시한 이래 그가..
인생과 맞바꾼 역사서 (사기)의 저자 사마천 인생과 맞바꾼 역사서 (사기)의 저자 사마천 사람이 뜻을 세우고 그 뜻을 평생을 바쳐 이룩해낸다면 그 일이 크든 작든, 중요하든 그렇지 않든 실로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서 집필에 대한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자 사마천은 궁형이라는 치욕적인 형벌을 감수해냈고 결국(사기)를 집필했다.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 하양 지방에서 한 조정의 태사령을 지낸 사마담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사령이란 천문을 관측하고, 달력을 개편하며,국가 대사와 조정 의례를 기록하는 등의 일을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사마천은 어렸을 때부터(춘추좌씨전) 같은 고문을 줄줄이 읽던 신동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전국을 여행하며 문물을 익혔고, 그 후 조정의 관리가 되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뒤를 이어 태사령에 올랐다. 사마천은 한무제..
지혜로 차지한 중국 대륙 한고조 유방 지혜로 차지한 중국 대륙 한고조 유방 한나라는 중국 역사상 두 번째 통일 국가로 후세 모든 중국 국가들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한나라를 세운 사람은 놀랍게도 평민 출신인 유방이었다. 유방은 패(沛)나라 출신으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으나 가사를 돌보지 않고 이런저런 유협의 무리들과 교우했다. 장년이 되어서야 사상 지방의 정장이라는 말단 관리가 되었다. 하지만 여산의 황제릉 공사에 부역하는 인부들을 호송하던 중 도망자가 속출하며 임무 수행이 어려워지자 나머지 인부들을 풀어주고 자신도 도망쳐서 산중에 은거했다. 진나라 말기,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군웅이 봉기했는데, 당시 유방도 진나라 타도의 기치를 들고 군사를 일으켜 패공이라 칭했다. 다음 해 북상하여 항양, 항우의 군과..
거지에서 황제까지 명태조 주원장 거지에서 황제까지 명태조 주원장 명나라 초대 황제 태조는 역대 중국 황제 가운데 가장 미천한 출신으로 알려진 인물이다.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굶주림 때문에 한때는 억지로 승려생활까지 했던 그는 홍건적, 이라 불리던 백련교도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후 새로운 왕조를 열어 황제가 되기 전까지의 생활은 굴욕과 가난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주원장의 부친 주세진은 아내와 4남매를 데리고 그럭저럭 연명하는 가난한 소작농이었다. 1344년, 주원장이 17세가 되었을 때 돌림병으로 가족 모두가 횡사하고 살길이 막막해진 그는 궁여지책으로 부근에 있던 (황각사)라는 절로 들어가 억지로 탁발승이 되었다. 그런데 원치 않는 탁발승 생활을 마감하게 해준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백련교도의 난이다. ..
송학의 태두 주자 송학의 태두 주자 주자가 인류 역사에 공헌한 일 중 으뜸을 꼽으라면 송대의 유학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여 주자학(朱子學)을 완성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공자 이후 이어져 내려오는 유학은 훈고학 (訓古學 ) 이라 하여 경전에 주석을 붙이는 생명력없는 학문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이런 훈고학의 한계를 넘어서 개인 수양으로서의 학문, 천하를 다스리는 기틀이 되는 학문, 인간 본성을 고민하는 학문으로 재탄생시킨 것이 주자다. 송학, 이학, 도학, 성리학으로도 불리는 주자학은 젊은 지식층이 있었던 사대부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송대 이후 중국 사상계의 기초가 되면서 외국 문물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청대까지 그생명을 이어나갔으며, 한국과 일본 등의 인접 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주자는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
부하들이 입혀준 용포 송태조 조광윤 부하들이 입혀준 용포 송태조 조광윤 907년 당이 멸망한 후 960년 송나라가 건국될때까지 중국은 대혼란을 맞게 된다. 5대, 즉 후량, 후주,후당,후진,후한과 10국, 즉 전촉, 후촉, 오, 남당, 오월,민,형남,초, 남한, 북한으로 중국 영토가 쪼개져 5대10국으로 일컬어지는 군웅할거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이들 나라는 당말기 각 지방에서 득세한 절도사들이 독립하여 세운 나라였다. 중국 역사상 암흑기로 불리는 이 시기는 후주의 한 절도사에 의해 마감되는데, 그가 바로 조광윤이다. 그는 하북성 고안현 사람으로 부친은 후당의 금군 장관이었던 조홍은이고 모친은 두씨이다. 조광윤의 가문은 3대조부터 군관으로 공을 쌓아온 집안이었다. 스무 살 무렵 조광윤은 후주의 왕 곽위의 양아들 세종의 군대에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