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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출신 대통령 레흐 바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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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출신 대통령 레흐 바웬사

 

 

노조운동가로 '폴란드를 민주화시킨 주역'이며 노조 지도자로 최초의 노벨평화상을 받고 대통령이 된 인물 레흐 바웬사.

그는 1943년, 폴란드 부오추아베크 근처인 포포보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나치 독재의 점령 시기에 죽었고 그는 초등학교를 나와  집에서 농사를 거들다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집을 뛰쳐나온다.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그다니스크에서 레닌조선소 전기공이 되었다. 

 

 

1970년 12월 식량폭동 당시 바웬사는 거리시위를 하던 사람들이 경찰의 총에 맞고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고,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민주적인 노동조합 결성을 결심하고 노동운동에 가담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요구조건을 조선소 측에 제시했지만 노동운동 탄압으로 4년 간 실업자 생활을 해야만했다. 

 

1976년, 레흐 바웬사는 '죽은 노동자를 위한 기념탑'을 세우기 위하여 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실직 상태에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연명하면서도 끈질기게 노동운동을 하여, 폴란드 공산정부에 대항한 시위가 발생했을 때 그는 반정부 노동조합 활동가로 부상했다. 

 

 

1980년 8월 14일 레닌조선소에서 식료품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을 때, 바웬사는 조선소 담벽을 타고 넘어가 내부 노동자들과 합류했다. 이때 바웬사는 경영진과 협상할 파업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경영자 측과 3일 간의 협상 끝에 파업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또한 바웬사는 그다인스크-소포트-그디니아 지역의 공장들을 묶는 공장 간 파업위원회의 위원장도 맡았다. 위원회는 파업권과 노동조합결성권 등의 과감한 정치적 요구를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한 공산당국은 노동자들의 주요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연대자유노조가 얻은것은  일시적이었다. 1981년 12월 13일 폴란드 정부는 계엄령을 발표하고 연대자유노조를 불법화했으며, 바웬사를 포함한 연대자유노조의 지도자들을 대부분 체포했다. 바웬사는 이때 거의 1년동안 구금되었다. 

 

1983년 바웬사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폴란드 정부는 이를 비판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망명객이 될 것을 두려워한 바웬사는 폴란드에 남아 있고, 부인이 오슬로로 가서 대신 노벨상을 받았다.연대 자유노조의 지하활동을 지도하면서 바웬사는 끊임없이 폴란드 정부에게서 고초를 당했다. 

 

 

가택연금 직후 프랑스 파리로 자신의 자서전을 몰래 보내 1987년 (희망의 길)을 출판했는데 이는 소련 등의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폴란드 사회운동가로 손꼽히던 그는 1989년 폴란드 사회주의 정권의 몰락에 기여했고, 1990년에 민주 폴란드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96년까지 폴란드 대통령으로 재임했으나 당시 정책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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