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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의 초원제국 티무르 초인의 초원제국 티무르 오늘날에도 우즈베키스탄에서 티무르(1336~1405)는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그는 혼란스런 중앙아시아를 통일하여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찬란한 도시문화와 궁정문화를 꽃피우게 한 위대한 정복자이다. 유례없는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제국도 14세기 후반부터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제국의 통합력도 점차 약해져갔다. 바로 그런 시대에 티무르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여 붕괴한 몽골제국을 재건하려고 하였다. 그는 1369년 중앙아시아의 여러 유목 부족을 통합한 뒤 1405년에 중국 명나라를 치러가는 도중 사망할 때까지 근 40년 동안을 유라시아 각지를 정복하였다. 칭기즈칸이 건국한 몽골제국이 그의 손자 시대에 세계 정복을 완성했다면 티무르는 자신의 시대에 완성한 것이다. 비록 몽..
고대 이집트제국의 융성요인 고대 이집트제국의 융성요인 B.C. 3000년경부터 시작된 고대 이집트 초기 왕조로부터 말기 왕조(B.C.644-332) 제30 왕조에 이르기까지 2,500년 장구한 세월 동안 세 번의 중간기를 거치며 혼란의 시기를 경험했다. 그런데도 이집트 제국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나일 강의 존재이다. 천혜의 자원 나일 강의 범람이 그들에게 풍요를 제공함으로써 안정된 곡물 창고를 보유했던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은 안정적이고 비교적 일관된 신정정치와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명을 창출할 수 있었다. 둘째, 신격과 인격이 결합된 존재로서 절대 권력을 보유했던 강력한 파라오와 그 힘의 요소이다. 파라오는 하늘에서 땅을 지배하는 신들의 후손으로서 지상신의 자격으로 왕국을 보호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파라오에 ..
영국의 산업혁명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영국의 산업혁명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산업혁명의 직접적인 계기는 동력 기계의 발명에서 비롯되었다. 최초로 기계 공업의 중심이 된 부문은 면직물 공업이었다. 영국에서는 이전부터 모직물 공업이 발달했는데, 모직물은 값이 저렴하고 세탁하기에도 편리한 면직물 공업으로 대체되어 갔는데, 인구의 증가와 경제적인 여유로 면직물에 대한 국내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지리상의 발견 이후 값싸고 질 좋은 인도산 면화가 대량으로 들어오게 되자. 영국의 면직물 공업은 경쟁력을 상실했다. 이에 영국에서는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비의 절감을 통해 당면 과제를 해결하고자 대량 생산을 위한 기계의 개발에 노력했다. 기계에 의한 면직물 공업의 최초의 능률화는 1733년에 존 케이가 개발한 '나는 북 :재봉틀의 밀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신성 로마 제국의 체면을 살리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신성 로마 제국의 체면을 살리다 신성 로마 제국은 중세 이래 영방 국가로의 분열 체제를 지속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30년전쟁은 제국의 분열을 더욱 가속화하여 제국의 통일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았다. 이 전쟁은 제국 내에 신구교간의 종교적 대립으로 시작되었지만, 다른 나라들이 개입하면서 열강들의 유럽에 대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국제전쟁으로 발전했다. 전쟁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막을 내렸는데, 그 결과 제국 내의 신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얻었으나, 신교도를 지원한 프랑스와 스웨덴에게 많은 영토를 빼앗겼고, 스위스와 네덜란드의 독립이 승인되었으며, 수많은 제후국들이 독립국으로서의 주권을 인정 받았기 때문에 제국의 통일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제국의 영방 국가인 동부의 ..
만티네이아 전투 만티네이아 전투 스파르타는 양국의 동맹국들과 별도로 아테나이와 50년 동안 서로 침략하지 않는다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을 체결하게 된 데는 절박하고 직접적인 두 가지 동기가 작용했다. 스파르타의 목적은 아테나이로부터 필로스와 약 300명의 인질을 돌려받는 것이었다. 아테나이는 스파르타로부터 암피폴리스를 돌려받고자 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코린토스와 엘리스의 의심을 부추겼다. 그나마 테바이가 이끄는 보이오티아 도시들은 전통적으로 과두제를 선호하는 스파르타의 보호 아래 있는 것이 그들의 권력 유지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반스파르타의 보호 아래 있는 것이 그들의 권력 유지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반스파르타 협약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니키아스 평화조약에는 꿋꿋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지켰다. 그리고 기..
레오니다스의 생애 레오니다스의 생애 레오니다스 1세는 기원전 540년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는 부왕 아낙산드리다스와 첫 번째 아내 사이에 태어났지만, 적법한 후계자는 아니었다. 중혼이 분명한 두번째 아내에게서 클레오메네스가 태어난 뒤에 아낙산드리다스는 마침내 첫 번째 아내에게서도 세 아들을 얻었는데, 도리에오스, 레오니다스, 클레옴브로토스였다. 헤로도토스는 레오니다스의 부왕 아낙산드리다스의 중혼은 '스파르타인답지 않은 것'이라고 평했다. 물론 그럴지도 모르지만, 기원전 520년경 아낙산드리다스가 사망한 뒤 클레오메네스가 왕위를 물려받을 때 그런 사실이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레오니다스가 기원전 540년경에 태어난 것이 맞다면, 보통 스파르타 기준으로 기원전 510년쯤에..
나나크의 종교개혁 나나크의 종교개혁 아마도 마르틴 루터가 나나크를 알았다면 그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은 상호적인 것이지만, 루터는 시크교의 창시자인 구루 나나크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들은 비슷한 격동기를 살았다. 나나크는 1469년에, 그리고 루터는 1483년에 태어났다. 나나크는 1539년에, 그리고 루터는 7년 뒤인 1546년에 죽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결코 들었던 적도 없었다. 나나크는 인도에서, 그리고 루터는 6,500킬로미터나 떨어진 독일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그들은 둘 다 자신들이 태어나면서 가졌던 종교를 개혁한 사람이다. 그들이 살았던 방식과 믿었던 세계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을 통해 우리는 종교가 진리와 순수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경향이 있는지 떠올리게 된다. 시크교도는 ..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 이븐압둘라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 이븐압둘라 아라비아의 홍해 연안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는 전 세계적으로 그리스도교에 필적할 만한 종교인 이슬람교의 창시자이자 지중해 주변에 거대한 제국을 세운 정복자이기도 하다. 아라비아 사회는 무함마드가 탄생하기 전에야 비로소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경제생활은 매우 단순해서 낙타를 이용한 대상(caravan)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메카는 특히 인도양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대상로의 요지였다. 예부터 흩어진 유대 인들이 살았으며 이비아니교, 마리아나이트, 네스토리우스교 등 그리스도교 이단이 로마의 이단정죄를 피해 거주하였다. 메카의 지배 계급은 5세기 말경 황야에서 온 쿠라이시 족으로 무함마드는 쿠라이시 족의 하심 가에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