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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초이스

키워드로 보는 오늘-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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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술하는 내용은 인초이스가 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옳고 그름의 판단은 여러분이 하시기 바랍니다. 

1981년 1월 5일은 의미깊은 날이었습니다. 바로 야간 통행 금지가 전면 해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당시에는 안보,치안을 생각할때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혼란이 있을 거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밤거리는 평온했습니다. 개들만이 야간 통행 금지 해제에 적응을 못해 밤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짓는다는 

재미있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답니다. 이로 인해서 거리의 이변은 없었으나 밤 문화는 많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야경 버스, 심야 영화 상영 등이 바로 이 때 생겨난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어리벙벙 했다고 합니다. 통제의 그늘에서 벗어나니 자유가 이렇게 좋은 것이다란 것을 알게된거죠. 이렇게 좋은 걸 그동안 왜? 묶어놓은거지... 

 

 

1981년 1월 5일 역사적인 통행금지 해제

 

1981년 크리스마스 마지막 야간통금이 있던 날 밤, 시청 앞 서소문로입구 버스정류장에 줄지어 서있는 서민들의 모습

 

통행금지로 차량과 인적이 끊긴 서울역 앞

 

통금해제 후 서울의 밤 야경관광 모습

 

이 외에도 두 발이나 교복 자율화 등의 정책도 시행되었으며 프로야구, 프로축구가 창단되어  스포츠 산업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스포츠 대통령이란 별명도 이 때 얻으셨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64 때 축구부 골키퍼도 했고 스포츠를 좋아한  그런 측면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비판적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집권 과정에서 부당성 이런 게 부각 될 수가 있으니 국민들 관심을 스포츠 쪽에 많이 돌렸습니다. 또한 스포츠, 스크린 성인 문화가 큰 활기를 띄며 국민들의 관심을 딴 데로 끌기 위한 과감한 조치와 다양한 정책이 물량 공세로 등장했던 오 공화국 서슬퍼런 군사 정권에서 오히려 그동안 묶여있던 것들이 풀리는 아이러니한 시절이었습니다. 일년의 사회, 정치, 문화, 경제 정책 자유화 조치가 취해진 것으로 전두환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아시안게임, 팔팔  올림픽도 열려서 이 때에는 경제가 쭉 수직 상승하는 상황이어서 집권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전두환 대통령은 경제정책에 매진합니다. 그 결과 연평균 경제 성장률 십 점 일 퍼센트를 기록하며 단군 이래 최대 경제 호황을 이루었죠.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이 되기전 우리나라 경제 여건은 좋지 않았습니다. 국정 전반을 파악해 보니까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는 것이 전두환 대통령의 솔직한 고백이었다고 합니다.

다들 아시죠 이 차 석유 파동으로 배럴당 유가가 오십 퍼센트 이상 폭등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등 국내외 경제 사정이 최악이었습니다. 당연히 경제 살리기를 오 공화국의 최대 목표로 삼은 전두환 대통령은 경제 정책 추진에 있어서 강한 통치 스타일을 발휘하게 됩니다. 신병현 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1년 뒤에 물가를 한 자리 숫자로 잡지 않고 뭐 십 프로 이상 되었다고 하는 보고서와 부총리 사표를 같이 써서 가져오세요. 이로인해서 물가 상승률은 일 년 만에 이십일 점사 퍼센트에서 칠 점 이 퍼센트로 떨어졌다.

 

 

https://youtu.be/Skgn00ODxgk

1982년 교복 두발 자유화

 

86아시안게임 및 88올림픽 성화봉송 주자 기록사진

 

프로축구 출범

 

프로야구 출범

 

인초이스가 여기서 한 가지 느끼는 점은 경제는 과감하게 경제 전문가에게 맡기고 당신이 대통령이요 하는 결단력과 스포츠로 전 국민에게 역동성과 감동을 안겨주었고 모르면 배워야 한다는 주관이 있었다는 것 입니다. 당시 김재희 경제수석에게 새벽 일과 후까지 배웠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KDI 경제학 박사한테 김재익 경제수석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경제 과외를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정부가 돈을 써서 시중에 돈이 늘어나면 물가 안정을 해치는 그런 오랜 타성을 끊어버리겠다. 김재익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한 전두환 대통령은 총선에서 지더라도 1984년 예산을 1983년과 같이 동결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삼퍼센트 대로 급격히 떨어져 물가 안정을 이루었으며 1986년부터는 저금리 저환율 저유가 3저 현상이 일어나 집권 말기엔 일인당 GNP가 삼천 달러가 넘는 경제적 호황을 누리게 됩니다. 인초이스는 키워드로 보는 오늘 전두환의 글을 쓰면서 느끼는 점이 많습니다. 모르면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면 되고 유능한 참모를 고루 기용하는 결단력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마인드를... 사실 그게 독재 정권이니까 가능했던 거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그 덕분에 건전 재정의 기초가 그 당시에 마련됨으로 인해서 지금까지도 재정적으로는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여전히 건전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경제 성장 물가 안정 국제 수지 흑자 세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전두환 대통령. 고른 인재 등용과 경제 공부에 적극적이었던 그가 이룬 성과였습니다.

 

 

경희궁 과거시험 재현행사

 

나라곳간 지키신 박근혜 대통령 즉각 석방하라

 

키워드로 보는 오늘 전두환!!!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많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음에 더욱 좋은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화이팅 입니다^...^

 

>전문가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도 너무 멋지다

>박정희 대통령은 100년 걸릴 성장을 단 10여년 만에 이루었다

>경제 부분에 대해서는 전두환 대통령 만큼 효율적으로 이끈 인물은 없다

>인정할건 인정하고 살자 먹고살기는 저때가 좋았다 인간들아

>안보 치안 확실했고 일자리는 널리고 물가는 싸고 중산층이 두터웠던 시절

>어떻게 반대로 된게 독재자들이 능력위주로 인재 등용하고 지금 민주정권이라는 자들은 낙하산에 대통령 팬클럽 지기    까지 낙하산이냐

>데모질했던 운동권출신 안희정도 전두환 시절때 등록금 물가 모든것이 좋았다고 말할정도니 말다했지

>5.18공산 폭동 성공적으로 진압해서 대한민국 적화 막으신 분이시다

 

기타 등등...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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