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오스만제국의 신데렐라 룩셀라나 (휘렘 술탄)

반응형

본래 터키인이 아니라 폴란드-리투아니아 로하틴 출신으로 정교회 사제의 딸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황후와는 거리가 먼 출신이라고 볼수 있지만 1520년대 우쿠라이나를 침공했던 타타르족에게 포로로 붙잡혀 노예가 되어 크림 칸국의 궁정으로 보내졌고, 거기서 또 다시 칸국의 종주국인 오스만 제국에게 바치는 조공으로서 수도 코스탄티니예의 하렘으로 보내졌다. 그 당시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술탄이었던 쉴레이만 1세의 눈에 띄었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휴렘에게 반한 쉴레이만 1세는 알렉산드라에게 '휴렘'이라는 호칭을 내리게 되고 술탄의 아이들을 낳게 된다. 

 

당시 쉴레이만 1세는 마히데브란 술탄과 귈펨 하툰이라는 두명의 여성들 사이에서 자식을 본상태였고 특히 마히데브란에게서는 무스타파라는 아들을 둔 상태였다. 무스타파는 쉴레이만의 후계자로 낙점되어 있었지만 쉴레이만은 마히데브란이 아닌 휴렘을 황후로 맞이 하였고 정식으로 결혼하여 '술탄의 배우자'라는 사실을 공표한다. 휴렘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쉴레이만 1세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 하렘의 모든 여성들은 다른 나라의 왕비,황후들 처럼 임금의 사랑을 받고 그 나라의 국모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니라 파디샤(황제)에게 순종하며 제국의 대를 잇는 혈통을 낳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었다. 휴렘 술탄은 이런 관례를 깨고 오스만 제국 최초로 술탄과 정식으로 결혼을 했으며 황후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마히데브란이 아닌 휴렘을 사랑했던 이유는 마히데브란은 단순히 숥술탄에게 순종적인 여성이었지만 휴렘은 성직자의 딸이었기에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을수 있어서 매우 지혜로웠고 술탄에게 도움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는 지적인 여성이었다. 그 모습에 술탄이 반했다고 한다. 

 

결국 쉴레이만 1세는 술탄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제국의 관습을 깨고 휴렘과의 결혼을 선언했다. 황족들과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휴렘을 사랑했던 쉴레이만은 이 모든 반대를 무시하고 사랑하는 휴렘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몇년전에 있었던 제국의 대재상이자 쉴레이만 1세의 절친한 친구 이브라힘 파샤와 쉴레이만 1세가 가장 아꼈던 여동생 하티제공주의 결혼식보다 더 화려한, 오스만제국 역사상 손꼽히는 화려한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노예출신 여성이 술탄의 총애를 받자 궁정 내부에서 많은 견제를 받았다. 그러나 승자는 휴렘이었고 궁정 암투끝에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황후가 되었다. 그 과정엣에서 많은 정적들을 작살냈는데 술탄을 두고 다투던 마히데브란을 지방으로 쫓아보내고 자신의 아들을 쉴레이만 1세의 후곚계자로 옹립하기 위하여 술탄의 후계자로 낙점되어있던 무스타파를 계략으로 죽인다. 무스타파의 편을 들던 쉴레이만의 최측근이자 오스만 제국의 재상이었던 이브라힘 파샤가 사형당하는데에도 그녀의 입김이 컸다. 

이렇게 궁중 내부에서 권력다툼을 주도하면서 정치게 개입을 하면서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는 원인을 가지고 오기도 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초중반기에 술탄의 자식들간의 황휘다툼이 치열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인망이 높고 능력이 출중했던 무스타파를 죽인것에 대해서 비난이 많다. 쉴레이만 1세가 유럽과 페르시아를 정복하러 자주 이스탄불을 비웠을때는 술탄과 다름없는 권력을을 쥐기도 했다. 성격도 신경질적이고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쉴레이만 1세와 휴렘 술탄의 사랑만큼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해져 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쉴레이만은 휴렘을 오스만제국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정식 황후로 책봉했을 뿐 아니라 휴렘을 제외한 하렘의 어떤 여인도 만나지 않았을 정도로 사랑했던 것이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