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혁명으로 축출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만주국의 초대 황제이다, 현재까지는 중국 및 역대 북방 이민족의 마지막 군주. 불과 우리나라 나이 3살에 즉위했다가 불과 3년만에 퇴우하였다. 성인이 되면서 괴뢰국의 군주로 옹립되어 종전 후 전범으로 몰려 옥살이도 하고, 만주족이 세운 왕조인 청나라의 황제였지만 그가 할줄 아는 만주어는 '일어서'라는 의미의 '일리' 밖에 없었다. 사실 이건 청나라 황족이나 귀족 계급인 만주족이 한족에 동화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중국에서는 멸망한 국가의 마지막 황제는 다음 왕조가 묘호 등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폐제로 인정되어 공식적으로는 황제 취급을 하지 않는다. 청나라 다음의 중국은 공화국을 기반으로 한 중화민국이었고, 당시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선통제의 묘호를 결정할 수가 없었다. 사실 자금성에 선통제를 살려둔 이유 자체가 청나라의 황제를 외국 황제로 둔다는 명분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고 부의는 명분이야 어떻든 일본에 협력했으므로, 묘호 같은 걸 줄 이유가 없었다. 거의 모든 경우 부의 , 잘 불러 줘 봐야 선통제나 말제로 일컬어진다.
묘호는 두가지가 있는데, 1967년에 대만에 있던 종친들로부터 헌종이라는 묘호를 받았고, 2004년에는 공종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중국 종부에서는 묘호와 시호 모두 인정하지 않고 손제라는 칭호로 부르거나 그냥 푸이라는 이름 그대로 부른다.
휘는 아이신기오로 푸이 , 만주어 발음으로도 푸이고 중국어 발음으로도 푸이다. 헨리라는 영어 이름도 있는데, 푸이의 개인교사였던 영국인 레지널드 존스턴이 헨리 8세의 이름에서 따서 붙여준 이름이다. 하지만 이 이름은 1920년부터 1932년까지 서양인들과 대화할 때만 잠깐 사용 되었을 뿐이며, 중국에서는 잘 쓰이지도, 알려지지도 않았다. 청나라 때는 황제의 본명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무례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당연히 본명이 불릴 일이 거의 없었고, 제위를 잃고 평민이 된 후에는 그냥 푸이 선생이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아이신기오로라는 성은 잘 쓰이지 않았다.
푸이의 이복 동생 푸런(1918년 8월 17일~2015년 4월 10일)은 이름을 한족식 이름인 진유즈로 바꿨다. 즉, 이름을 바꾸면서 성도 진씨로 함께 바꾸었다. 현재도 많은 만주족들은 진씨 성을 사용한다.
연호는 만주식으로 거훙거 요소, 중국식으로 선통, 만주국 시대의 연호는 강덕, 이 때문에 강덕제라고 검색해도 이문서로 연결된다.
일생동안 청의 멸망부터 군벌 내전, 신해혁명 , 중일전쟁, 태평양전쟁,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 중국 현대사의 굴절이란 굴절은 모두 다 겪으면면서 살아남고 황제만 2번을 한, 20세기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