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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성공적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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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18왕조 5번째 파라오, 고대 이집트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파라오이자 이집트 왕실의 공주이다. 고대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는 아니다. 그녀 이전 고왕국과 중앙국 시대 혹은 그 중간기에 두세 명의 여성 최고위 지도자가 존재했다고 여겨지며 이중에서 확실하게 왕의 지위에 오른 것은 sobekneferu 한명이므로, 여성으로서 파라오의 직위에 오른 것이 확실한 것으로는 두번째 여성 파라오다.

 

 

기원전 1508년 투트모세 1세와 정비 아흐모세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복 남매인 투트모세 2세와 결혼하였는데, 이는 후궁 무트네페르트의 소생이었던 투트모세 2세의 제위 계승권을 위하여 치러진 정략 결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태의 남매간의 결혼은 고대 이집트 전반에 걸쳐 유행하였다. 투트모세2세와 하트셉수트 사이에는 딸 네페루레만 있고 아들이 없어 투트모세 2세는 이세트라는 후궁을 맞아 아들이자 후계자인 투트모세 3세를 낳았다. 즉 투트모세3세는 하트셉수트의 친아들은 아니다. 투트모세3세에게 하트셉수트는 계모이자 고모, 장모, 이다. 

 

투트모세 2세가 죽고 후계자인 투트모세 3세가 너무 어려서 하트셉수트가 공동으로 파라오가 된다. 성문화 된 법률로 안보인다 뿐이지 수렴청정형 섭정 풍습은 존재했다. 왕이 너무 어려 왕대비가 섭정을 하거나, 남편 파라오가 갑자기 죽어 수년간 섭정 역활을 한 왕비의 기록은 신왕국 시대 개창 이전에도 남아있었다. 하트셉수트 역시 처음에는 파라오가 아닌 섭정의 지위에서 통치를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투트모세2세 사후 나온 관련 문헌들도 그녀를 섭정으로 설명하고 투트모세2세의 공식 후계자는 투트모세 3세라고 명시한다.

 

 

하트셉수트가 섭정을 시작했을때 투트모세 3세의 나이는 10살 미만으로 추정된다. 그녀가 완전히 파라오로 타바꿈한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수 없으나, 하트셉수트의 외양이 수염을 단 파라오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최소 투트모세3세 치세 7년 후부터이다. 이후 20년간 하트셉수트는 정치,군사적 실권을 쥐고 투트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다스렸다. 공동 통치기에 하트셉수트의 권력이 투트모세의 권력보다 더 컸을 것으로 추정한다.

 

파라오 하트셉수트를 묘사한 석조 조각이나 벽화는 남자와 비슷하ㅔ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파라오가 되기 위해선 여성의 속성을 지워낼 필요가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파라오의 표식이 남성적인 아이템들이라 하트셉수트가 남성적으로 묘사가 되었는지는 단순히 남자 파라오의 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나 자세도 남자에 가깝게 묘사된다는 점이다. 초기 묘사는 여성적인 자세나 생김새가 두드러지지만, 후기로 갈수록 자세는 빳빳해지고 가슴이 작아진다. 장제전에 조각된 하트셉수트는 설명 없이 보면 그냥 남자다.....양성적인 묘사와는 거리가 있다.

 

참고로 가짜 수염과 같은 복장은 조각상이나 무덤 부장품에서 묘사되지만 남성 파라오 또한 실제 생전에 평상시에 이런 길쭉한 수염 등의 복장을 유지했던 것은 아니었으며, 특수한 상황에 의례용 가짜 수염을 붙이는 것은 남성 파라오도 마찬가지였고, 얼마나 자주 이런 복장을 했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한다.

 

하트셉수트는 투트모세 1세로 변한 아문 신이 왕비 아흐모세와 동침하여 태어났다는 탄생 설화를 창작하였으며, 이름에 '아문 신과 결합한'이라는 뜻의 '켄메트 -아문'이라는 칭호를 넣었다. 이런 탄생 설화 창조는 파라오들에게 흔한 일이었고 특별히 정통성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이전의 다른 파라오들이 하던 대로 전통을 따랐을 뿐이다.

 

하트셉수트는 누비아,레반트, 푼트 등 주변국과의 무역에 힘써 많은 이득을 얻어내고 힉소스의 잔재를 씻어냈으며, 오리엔트 일대에 다시금 이집트의 위상을 높였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그녀를 내치에 힘쓴 군주로 평가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그녀의 무역에 군사적인 원정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트셉수의 치세는 이집트 역사 전체를 통틀어 모든 여성 파라오 중 가장 길고 번영한 시대이며 그녀는 이집트의 역대 여성 파라오 중 가장 성공적인 치세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18왕조 번영의 토대를 이룩한 시기라해석되기도 하며, 그증거로 제세르 제세루(장엄 중의 장엄엄) 이라고 불리는 하트셉수트의 거대한 장제전이 있다.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 옆에 세워진 하트셉수트의 거대한 장젲제전은 암벽을 깍아 아문 신의 성역을 조성하고, 아누비스 예배당과 하토르 서성소를 비롯한 각종 제실,그리고 자신의 타생 설화와 푼트 원정 등을 부조로 남겨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하트셉수트가 이룬 성과를 기반으로 투트모세 3세는 제 18왕조 최대의 영토와 번영을 이룩하였다.

 

기원전 1458년 1월 16일 사망하였다. 신왕국 시대 파라오들이 그랬듯이 그녀 또한 왕가의 계곡에 묻혔으며,장제전 암벽 바로너머의 kv20이 그녀의 무덤이다.

 

1903년 하워드 카터는 kv60 무덤에서 신원 불명의 여성 미라 2구를 발굴한다. 그중 한 구는 하트셉수트의 유모로 밝혀졌고, 나머지 한구는 여전히 신원 미상이었다. 그러던 중 2007년 하트셉수트의 이름이 적혀있는 항아리에서 발견된 치아와 미라의 없어진 치아 부분이 정확히 일치함에 따라 그 미라가 하트셉수트임을 알게 되었다. 미라는 꽤 보존 상태가 좋은 채로 남아 있어서서 165cm의 키에 살짝 살집이 있는 체형의 여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연구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50대에 즈음 암의 일종인 골종양이 전신을 퍼졌기 때문으로 밝혀졌으며, 그 외에 관절염,치주염을 비롯한 충치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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