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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끼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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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끼 고개

 

죽 비가 오지 않아 성도 망루도 바싹 메말라 있었다.

그 뜰 끝에 수없이 화톳불이 피워져 있다. 새하얀 벽에 불꽃이 비치어 출전 전날 밤의 순뿌 성은 거리 복판에 분홍색 신기루가 일어난 것처럼 아름다웠다. 

스물 네 살 약간 살이 찐 성주 이마가와 요시모도는 단정히 입은 옷깃을 열고 때때로 겨드랑이에 고이는 땀을 닦았다. 

투구와 갑옷은 뒤 도꼬노마에 화려하게 장식된 채였지만 팔덮개와 각반도 단단히 차리고 다다미 위에 놓은 노루 가죽을 덮은 걸상에 감발한 채로 앉아 있었다. 

이미 출전의 축배는 마련되어 있었다. 칠하지 않은 나무 소반에 전쟁에 이긴다는 밤과 다시마 안주를 갖추어 놓고, 바깥 성에서 통지가 오는대로 질그릇 잔을 깨고 성을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요시모도 바로 옆에는 그의 스승이며 군사이기도 한 고승 오오하라 셋사이가 보일둥말둥한 미소를 띄우고 있으며 양편에는 중신들이 늘어서 있어, 이것은 오와리의 오다 노부히데의 가풍과는 아주 대조적인 화려함을 보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나까미까도의 공주를 어머니로 가진 요시모도는 얼굴에 엷은 화장을 해서 눈썹을 그리고 입술에 연지를 찍었다. 얼굴과 차림새는 귀인처럼 우아롭게 보였지만, 골격과 눈빛에는 여간 아닌 날카로움이 엿보인다. 

그 또한 열 여덟 살 나던 봄부터 형 우지떼루의 뒤를 이어 세파에 휩쓸린 엄격한 무장이었다.

나의 적은 가히의 다께다 그리고.....하고 언제나 소리를 낮추어

아버님의 고모부뻘 되시는 호오죠 히야모님의 자손

자기에게는 조카들이라고 그쪽에만 오로지 마음을 쓰고 있었으나 오와리의 오다가 그의 앞길을 막을 만큼 장애물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었다. 

요시모도는 어머니의 감화도 있고 하여 어릴적부터 한결같이 교또에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동경은 제도꾸 사에 들어가 승적에 몸을 두고 학문을 쌓는 동안 더욱더 쌓여 갔다. 교또가 갖는 문화의 향기, 거기에 인간이 다같이 지향하는 우아로운 편안한 행복의 싹이 감추어져 있다. 

그것을 캐내어 만민의 것으로 만드는 자가 누구일까?

아시까가 일족의 피 속에 태어나 스루가, 도오도우미, 미까와의 지방에서는 기라씨와 겨루는 명문이라 칭송받는 가문의 자랑이 소년의 가슴에 그 꿈을 크게 부풀리고 있을 때에 뜻 밖에도 형 우지떼루가 일찍 죽고 말았다. 그래 열 여덟 살 난 요시모도는 환속하여 자기 집을 이어받게 된 것이다.

그의 몽상의 씨앗은 대지에 뿌려졌다. 그는 우선 오오하라 셋사이를 측근에 불러들여 이 스루가의 땅에 높은 문화의 향기를 감돌게 하려는 이상을 가졌다. 

그리하여 언문 섞인 법령등을 시민들에게 골고루 퍼지게 하며어진 정치를 하는 밝은 주군이라고 백성들에게 숭앙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몽상은 그것만으로 그치지는 않았다. 같은 일문인 아시까가 장군의 위새는 이미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의 몽상이 머잖아 교또에 올라가 이 장군을 도와 자기 손에 정권을 잡겠다고 생각하는 데에 이상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따라서 오와리의 오다를 새로이 일어난 실력주의자라 한다면 이것은 자유와 문화를 지상에 펼치려는 문명주의자에 비할 수 있다. 그 문명주의자가 지금 오와리의 실력주의자에게 최초의 철퇴를 내리려는 것이다. 

산속에는 이미 가을 바람이 일 무렵이겠지만, 올해의 스루가는 근년에 없는 늦더위였다. 

아직도 통지가 안 오는구나

몸 속의 땀을 딲으면서 요시모도가 다시 중얼거리자

서두를 것은 없습니다. 차츰 밤이 길어지는 철이니까요

셋사이는 중얼거리듯이 말하며 부채 바람을 요시모도에게 보냈다. 

아직 아무도 노부히데를 과히 큰 적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오까사끼에 있는 히로다다가 너무도 허약한 까닭에 이대로 두다가는 작년에 뺏긴 안죠성을 발판으로 하여 오까사끼 성에까지 손을 뻗칠 우려가 있다. 

오까사끼를 점령하여 뿌리를 박는다면 성가신일이다. 요시모도의 목적이 머잖아 상경하려는데에 있는 한 오다 따위를 그렇게 판을 치게 해둘 수는 없었다. 

히로다다가 아버지 기요야스 만큼 강했더라면

말씀대로 마쓰다이라만으로 끝날 일이겠지만 아무튼 아직 어리니까요.

상대가 오다라 점잖지 못하지만 본때를 보여줘야 하겠지

문벌 있고, 학식 있고, 더구나 예절이 밝은 요시모도에게는 , 오다의 대두가 무지한 불량배의 분수를 모르는 행동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오다와라의 호오죠네는 작년 칠월에 외숙부 우짔나가 쉰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나 그의 아들 우지야스가 상속을 갓 이어받았고. 가히의 다께다네에서는 노부도라 신겐의 부자가 줄곧 서로 다투고 있었다. 

따라서 이 가을에는 그가 성을 나가더라도 배후를 찔릴 염려가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요시모도는 노부히데 따위를 치기 위해 구래여 몸소 성을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이리 늦나!

더위에 지쳐서 다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마님에게서 심부름군이 왔다. 

노녀 하나가 요시모도 앞으로 나와 

가히의 장인님께서 출전 축하를 드리시겠다는 전갈입니다만

요시모도의 눈치를 살피듯이 하며 전갈을 했다. 요시모도는 씁쓸히 웃으면서 셋사이를 돌아 보았다.

셋사이는 모르는 척하고 옆을 보았다. 

가히의 장인 그것은 요시모도의 처남 다께다 신겐과 의논하여 이 성에다 연금해 둔 맹장 다께다 노부또라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 맹호를 여기다 사로잡아 놓고 신겐의 치정을 돕게 했다. 그것도 요시모도의 보통 아닌 외교 수완을 나타내는 것이며 오늘의 출전이 아무 걱정 없이 될 수 있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 장인님은 북쪽채 마님ㄲ 의논하시던가?

그래 마님께서 뭐라 하시던가?

주군님 뜻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요시모도는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아내, 신겐의 누이 또한 이 범 같은 아버지를 몹시 꺼려하고 있었다. 

군사 의논이 바쁘니 축사를 받지 않겠다고 말씀드려라

더위에 질력난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날카롭게 말한 다음 다시 목소리를 부드럽혀

마님께 잘 말씀드려라

신겐과 사이가 좋은 자기 아내에게 마음 쓰는말을 남기는 이것도 자기 없는 동안의 무사함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요시모도의 성격으로 말해서 멀리 오와리까지 싸움을 하기 위해 밤길을 떠날 리가 없었지만

오늘 출발을 앞두고 히꾸마노 성에 있는 부하 이오에게게서 좀 마음에 걸리는 통지가 왔기 때문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싸움에는 결코 오다 쪽에 편들지 않을 것이라고 오까사끼의 히로다다에게서 말해 온 미즈노 노부모도의 거취에 수상쩍은 낌새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요시모도는 자신이 오까사끼 성까지 진을 내보낼 작정으로 있었다. 거기서는 빼앗아야 할 안죠 성이 눈코 사이에 있었고, 그 너머에 노부모도의 가리야 성이 있었다. 따라서 노부모도의 거취는 요시모도의 군사 배치에 커다란 영향을 가져오는 것이다. 노부모도가 오다에게 가담한다면 오까사끼성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깊이 들어가는 셈이다. 

서두를 것은 없으니 좀더 기다리십시오

셋사이의 의견에 따라 히꾸마 노에서 다음 통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마침내 밤 열 시가 지나도록 아무런 통지도 없다. 곧 날이 새겠다. 내일은 묘일 , 자 떠나자

열 두 시가 지나자 마침내 질그릇 잔은 깨뜨려지고 보급대로 조용조용히 성벽 밖으로 나갔다. 

이 행렬 또한 노부히데의 야무사 같은 가벼운 차림에 비해 아주 장중한 것이었다. 

시내를 벗어나면 아마 요시모도도 가마에 바꾸어 탈 작정이었으리라 활부대 창부대 뒤에 보병이 따르고 수많은 짐 속에는 진중의 심심풀이를 위해 술과 안주가 들어 있으며, 그밖에는 익살군, 농악사까지 데리고 있다. 

오사까 이동에서는 가장 개명된 시장을 가진 순뿌였다. 온갖 물질의 주선군, 열명을 넘는 시종, 그밖에도 누가 보아도 측녀라 알수 있는 여자가 가마에 하나, 마상에 둘, 그 긴 행렬을 시민들은 저마다 집 밖에 나와 땅바닥에 무릎을 끓고 전송하는 것이었다. 요시모도는 호화로운 무장을 하고 그 사람들에게 가끔 가벼운 답례를 했다. 

그것은 교또식 풍류 가운데 말할 수 없는 위엄과 친밀감을 풍기며 야릇하게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마우신 주군님이야

유례없는 대장님이야. 이런 대장님에게 어찌 오와리의 오다 따위가 맞설 수 있담

그렇고말고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실 거야

그러나 드디어 시내를 벗어나 아베강을 건너 새벽을 맞자 요시모도의 기분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나 자기가 후원하여 오까사끼의 성에 넣어 준 히로다다. 너무나도 무력함에 무럭무럭 화가 치미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일부러 미즈노의 딸을 맞았느냐 말이다.

그 자신으느 가히의 다께다 씨를 맞아들임으로써 훌륭히 그 아버지를 사로잡고 처남 신겐을 교묘하게 누르고 있다. 

점차로 오이 강이 시야에 들어올 무렵이었다. 요시모도는 측근 무사인 나쓰메를 불러 놓고 오까사끼의 노신에게 즉각 히꾸마노까지 나오라고 알려라 오꾸라가 좋겠구나. 뒤에 남는 진지의 대비에 방심 맡도록 일러라.

준엄한 목 소리로 명령했다.

이마가와 요시모도가 순뿌를 떠나고 나서 오까사끼 성에는 빗발치듯 동서 양군에서의 정보가들어왔다.

오다 노부히데도 이미 나고야를 떠난 모양이었으나 이것은 어느 곳의 성채에 들르고 어디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여하간 오까사끼하고는 눈코 사이에 있는 안죠 성에 나타나 다짜고짜 깃대를 세울 작정임에 틀림없으리라

기분 나쁜 분이야. 신출귀몰한단 말이야.

여기 비해 요시모도의 진군은 어디까지나 당당하였다. 그날 그날의 야영지에서는 북소리가 들리고 가요 노래가 우아롭게 하늘에 울려 퍼졌다. 백성들의 평판은 비교도 될 수가 없었다. 

과연 이마가와님 하고 그 풍류에 동경의 소리마저 들을 수가 있었다. 사람은 항상 어딘가에서 문화를 그리워한다. 그 향기는 이마가와 쪽에 있었지 , 오다 편에는 없었다. 

군율은 오히려 오다 쪽이 엄격하건만 백성들은 한결같이 오다 쪽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가장 적절한 예는 부녀자였다.

그녀들은 오다 쪽의 잡병들에게 겁탈당할까봐 전율을 하면서도, 이마가와 쪽에는 엷은 교태마저 보이고 있었다. 

요시모도의 명령에 의해 오까사끼의 오꾸라가 히꾸마노까지 나가, 거기서 요시모도와의 대면을 마치자 오까사끼 성에 들어가 전군을 지휘할 예정이었던 요시모도의 계획은 별안간 바뀌었다. 

오까사끼까지의 진출을 중지하고 아쓰미 반도의 다와라 성을로 들어가기로 되었다. 

다와라의 성주는 도다 단죠

단죠는 물론 이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뻐 했지만, 오까사끼에서는 그 반대였다. 

젊은 성주 히로다다의 실력을 의심하고 불신을 표명한 것이 되었다. 오꾸라가 돌아오자 오까사끼 성의 대청 마루에서는 히로다다를 에워싸고 큰평의가 열리었다. 

그렇다면 요시모도님은 우리 주군이 어리시니까 못 믿겠다는 말인가요?

사까이가 서슴지 않고 묻자 오꾸라는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무뚝뚝해 있는 히로다다를 흘깃 보며

아무튼 적에게 너무 가깝소, 주군님의 당숙 노부사다님까지 적 편이니 만일의 경우에 적속에 고립되면 큰일이라 싶어 그것을 걱정하고 계시는 것 같소.

걱정해도 소용없는 일이 그밖에도 있소.

이시까와 아끼가 중얼거리듯이 말하자

아끼..

하고 히로다다는 날카롭게 말했다. 

그것은 가리야의 거취 문제를 가리키는 것이겠지 똑똑히 말하라

그렇습니다. 아버님 다다마사님은 단연코 오다 편엔 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노부모도님은 들떠 보입니다. 들떠 보이니 어찌려는 건가? 이 마당에 와서 불평을 하지 마라

불평이 아닙니다. 요시모도의 불안을 어떻게 제거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만약 오까사끼에 안 오신다고 결정되면 드디어 가리야의 마음은 움직이게 됩니다. 이마가와 쪽에서 오까사끼를 버릴 작정이라는 것을 알면 다시 편들 생각이 안 난다고도

이시까와가 여기까지 말하자

알았다! 그대는 오다이를 베란 말이냐!

히로다다는 또다시 찌르는 듯이 말을 던진다. 

이곳도 역시 심한 늦더위라 이미 해질녁이 되었건만 까딱하는 바람도 없었다 

뜻밖의 말씀을. 마님을 베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노부모도님뿐 아니라 아버님 다다마사님까지 노엽게 만들어 적편으로 쫓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그 말은 하지 마라. 듣기 싫다.

사람들은 살며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막상 싸움을 하게 되니 역시 히로다다로선 믿음직하지 못했다. 단지 여기서는 그 믿음직하지 못함을 아무도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젊은 히로다다에겐 모욕을 당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조용들 하시오.

하고 아베 오꾸라가 손을 흔들었다. 

군사 회의에선 말을 솔직히 하는 것이 마쓰다이라 당의 관습이오. 이마가와님께서 나에게 잔을 주시며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오. 히로다다가 아버지 기요야스 만큼만 어서 성장했더라면 하고. 히로다다는깜짝 놀랐다. 이처럼 심한 말은 없다. 

아버지보다 못한 자식이라고 준엄하게 책망받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말, 이것이 요시모도님의 속에 있는 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고 덤벼들지 않으면 안되오

그렇다 해서 이것을 그대로 우리 주군님을 모욕하는 말이라고 들어서는 안되오 우리를 노신들에게 어서 성장시키라고 명령한 말, 나는 그렇게 듣고 삼 년만  봐 달라고 부탁드리고 왔지요.

과연 아베는 능란하였다. 진실을 말하면서도 열 일곱 살 난 주군의 패기를 손상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뒤에 곧 이것을 파괴하는 자가 있었다. 

아하하 노인은 말이 능란하오. 그게 바로 애숭이니까 신용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그런 말에 넘어가면 안되지요.

오오꾸보 신빠찌로였다. 형 신주로는 여봐 신빠찌!

하고 눈을 흘겼고, 아우 진시로도 얼굴을 찡그리며 히로다다의 눈치를 살폈으나,신빠찌로는 태연히 

좌우간 요시모도님은 오까사끼에는 안오실거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 거요. 눈썹을 달고 이빨을 물들이고, 북에다 시녀들까지 섞인 본진, 뭐 그리 맞고 싶어할 필요도 없을 거요, 히로다다는 다시 꿈틀 하고 반신을 일으켰다. 

이봐 신빠찌, 말이 지나치잖느냐?

아니 지나치지 않았소이다. 모자라지요. 싸움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오. 생명을 주고 받는 일이란 말이오. 나는 이번 싸움에서 오다 편에 승산이 육할은 된다고 봐요.

무엇을 목표로 그렇게 보시오?

몸이 가벼운 편이 강한 법이요. 그러니 우리는 양군이 서로 맞부딪치는 장소를 잘 보아 두어야만 하오. 이마가와 군사가 패주하더라도 적이 쫓지 못할 선을 분명히 굳혀 두어야만 하오.

그렇다면 어디까지 적을 유인할 작정이오?

사까이가 참견을 하자

당신은 어디가 좋을 것 같소? 나는 아즈끼고개라고 생각하는데.

뭐? 아즈끼 고개?

아즈끼 고개는 오까사끼의 동쪽 , 성을 적 속에 남기겠소, 농성을 하겠소?

신빠지로는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농성을 해야죠. 적을 우리들 오오꾸보 당이 익숙한 산 속으로 끌어들여서 쫓아 준다면 가리야 성은 소홀히 오다와는 손을 잡지 못하겠지.

흠. 아즈끼 고개라

좌중은 갑자기 잠잠해졌다. 신빠찌로는 요시모도가 두려워하는 농성을 최초의 결심으로서 피차간에 알리자 하고 있는 것이다. 

중의는 결국 신빠찌로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하고 끝났다. 

요시모도는 아직도 노부히데의 실력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요시모도가 다와라 성에 남는 것은 노부히데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만일 오까사끼에서 오다들에게 추태를 보여서는 안된다는 체면에 구애된 조심인 듯했다. 

물론 히로다다의 힘을 의심한 결과였다. 

그에 대해 오다 편에서는 노부히데의 아우, 노부미쓰를 대장으로 하여 일족의 정예를 뽑아서 단숨에 야하기 강을 건너 원정군을 맞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기세가 뻗치는 대로 원정군과 마쓰다이라 군을 먼저 마구 무찌르고 돌아가는 길에 허술한 오까사끼 성을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 그 수에 넘어가면 여지없이 성을 빼앗기고 갈 곳없는 마쓰다이라 군은 그 길로 유랑하는 군사가 된다. 

이 지경이 되고 보면 일어날 의사가 없는 미즈노 부자라도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리라

그래서 처음부터 주력은 오까사끼에 남겨 두었다가 만약 이마가와 군사가 적을 구축하여 야하기 강 언저리까지 나왔을 때 비로소 성에서 쏟아져나간다. 만일 이마가ㅘ 편이 패주하게 된다면 가미와다 근처에 버티고 있던 오오꾸보 당의 사람들이 이겨서 돌아가는 오다 군의 배후에서 추격을 하여 오까사끼 근처에 오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오까사끼 성안에 상처입지 않은 병력이 있는한 그들은 결코 오오꾸보 당에게 오래 상대할 염려는 없다. 

그러면 우선 오까사끼는 안전하지만 이 결정은 젊은 성주 히로다다에겐 못견디게 불만스러웠다. 

이래서는 안죠 성을 되찾기 위해 순뿌에 진언하여 싸움을 벌이게 한 히로다다의 면목이란 아무것도 없다. 목적은 오까사끼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소극적인 데에 없고 이마가와 군의 조력을 얻어 적극적으로 안죠 성을 되찾는 데에 있었다. 

코앞에 있는 안죠 성에 히로다다를 어리다고 깔보고 오다 편이 된 당숙 노부사다나 그 일당들이 뻔뻔스레 드나드는 것을 보는 것이 견딜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나자 히로다다는 마음 속의 불만을 어깨에다 새겨 거칠은 발걸음으로 안으로 돌아갔다. 

이미 해는 떨어져 있었다. 

곡성에서 망루에 걸쳐 엄중히 전투 태세를 갖춘 성안은 괴괴하도록 고요하였으며 어디고 간에 벌레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낮의 더위가 거짓말같이 여겨진 만큼 선선했다. 이슬의 감촉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문득 정신이 들고 보니 가을 풀 무늬의 장지문 앞에 오다이가 방싯 웃는 얼굴로 두 손을 짚고 있다. 

히로다다는 그러한 오다이를 신기한 것이라도 바라보듯 내려다 보았다. 앞으로 석달만 있으면 아이가 난다. 그러나 부풀은 배는 겉옷 밑에 교묘하게 숨겨지고 생리적인 수척함이 요염스런 가련함으로 보여 눈에 스며들었다. 

오다이

나는 누구 눈에도 아버님만 못하게 보이는 모양이구나

히로다다는 이렇게 말한 다음 곧장 거실로 들어가 보료위에 앉았다. 

오다이는 가슴이 덜컹했다. 휴 한숨짓는 히로다다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유리 , 대감님의 상을 이리 가져오도록 해

그녀는 사뿐히 옷자락을 해치고 히로다다의 아래 쪽으로 돌아가 앉으며 그의 목덜미 살이 한층 더 빠진 것 같아 그것이 매우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자신도 울고 싶어졌다. 허나 히로다다의 마음을 어지럽혀서는 안된다 싶어 억지로 웃는 얼굴로 지우지 않았다. 

유리가 상을 나라왔다. 오다이는 손수 조그만 항아리를 곁들여 놓으면서 소중한 몸이시니

나직한 소리로 말한 다음 유리에게 물러가도 좋다는 눈짓을 했다. 곁들여 놓은 항아리는 치즈 항아리였다. 

오다이

아버지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슬픈 일이야

오다이는 잠자코 치즈를 접시에다 담았다. 

요시모도님은 나를 믿지 못해 이 성에 안 오신다는구먼

오다이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살며시 촟대의 심지를 잘랐다. 

우리 집 노신들도 나를 쓸모 없는 자로 생각하고 있어. 아버지의 지휘였다면 분발하여 오와리를 쳐들어갔을 자들이 내 대가 되니 성에서 물러나 적을 맞으라 하는구먼 내가 그토록 믿음직하지 못하나?

용서하세요. 그만큼 노신들은 대감을 아껴서 하는 말씀이겠지요

오다이는 일부러 순진하게

오까사끼의 보배는 그 노신들이라고 가리야의 아버지가 늘 부러워하셨는데요

히로다다는 조용히 국그릇 뚜껑을 열고는 젖가락을 들었다. 무어라고 말을 하려다가 잠자코 국그릇을 입으로 가져갔다. 

오다이의 배에서는 꿈틀 하고 태아가 크게 움직였다. 오다이는 배를 누르고 새삼 히로다다의 얼굴을 보았다. 뱃속의 아기가 활짝 손발을 펴는 그 꿈틀거림이 곧장 히로다다에 대한 애정으로 통해 갔다. 오다이는 그것이 신기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처음에 느꼈던 오히사에 대한 불안이나 질투는 태아가 꿈틀거릴 때마다 희미해져 가고 차분한 애정이 그것과 바뀌어졌다. 

어느 결에 오다이는 히로다다에 대한 비판을 그치고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무장으로서 신경이 날카로운 일이며 몸이 허약한 것이 자기 일처럼 마음에 걸렸다. 

요즘 히로다다가 잠을 자지 못하는 것도 오다이는 잘알고 있었다. 아버지 기요야스 시대엔 꽉 눌려 올 수 있었던 마쓰다이라 일족이 걸핏하면 히로다다를 깔보는 것이 못견디게 분한 모양이었다. 잠자리를 같이하고 있노라면 이놈 노부사다놈! 이런 잠꼬대를 하기도 하고  구란드 숙부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답답한 듯이 엎치락 뒷치락 한 끝에 불쑥 중얼거리는 일도 있었다. 그것이 이번에는 요시모도의 후원을 얻어 안죠 성을 탈환할 수 있을 것이 라고 흥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싸움은 보아하니 그의 머리 위를 겉지나가 오다와 이마가와의 야심을 건 커다란 싸움으로 바뀌어져 그 자신은 그 세력의 충돌 가운데서 자기 집안의 안전을 도모하게에 급급하지 않으면 안될 비참한 위치로 전락되고 말았다. 

히로다다는 가끔 으드득 이를 갈며 나물을 씹었다. 음식을 맛보는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 생각에 잠기어 노여움을 느끼는 침울한 얼굴이었다. 

식사가 끝났다. 유리가 상을 물려 가자

오다이

히로다다는 섬뜩할 만큼 골똘히 생각헤 잠긴 표정으로 오다이에게 돌아앉았다. 

강한 아이를 낳아줘! 나처럼 아버지만 못한 약한 자식은 낳지 말아 줘

그것이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 오다이는 저도 모르게 목을 갸웃하며 반문했다. 

뭐라고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강한 자식을 낳아 달라고 했어

히로다다는 그렇게 말한 다음 갸름한 얼굴로 천정 한 구석을 노려 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노신들에게까지 안절부절 마음쓰는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는 키는 작았지만 바위처럼 뚱뚱했고, 늘 노신들에겐 저렇게 하라 이렇게 하라 하고 엄격히 명령할 뿐이었어 그러면 누구나가 한 마디로 선뜻 움직여 갔지

그 점이 믿음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나는 못할까

수척한 볼이 파르르 경련하자 불빛을 빨아들이며 눈물이 뚝뚝 목에 떨어졌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어. 나는 이것저것 생각을 한다. 생각 않는 아버지는 신용을 받고 생각하는 나는 신용을 못 받는단 말이야. 노신들은 내가 대장이 되면 코앞에 있는 안죠 성까지도ㅗ 쳐들어가려 하지 않는단 말이야

오다이는 당황하여 고개를 내저었다 

오해시겠지요 모두들 대감을 끔찍이 생각하고 있어요

오다이! 나는 그것이 분하단 말이야

히로다다는 불끈 쥔 주먹을 무릎에다 세워 경련하듯이 또 눈물을 흘렸다. 

오다이에겐 그 모습이 가련해 보였다. 꼭 끌어안고 볼을 부비고 싶을 만큼 그럴 때의 히로다다는 어린 소년처럼 보였다.

내가 그렇게 약해 보이는 걸까 모두들 조마조마하게 걱정할 만큼 힘없이 보이는 것일까?

아니요 그런 그럴리가 없어요

거짓말 말아. 나는 다 알고 있어. 난 확실히 아버지보다 못한 거야. 이것저것 마음을 쓰는 만큼 약한 거야

그렇다 해서 어떻게 하면 마음을 쓰지 않게 된단 말인가.

히로다다는 여기서 소리를 삼키고 이번에는 엉석부리는 강아지 같은 눈이 되었다. 

오다이 

기원하자구 올해는 범해였지, 범처럼 늠름하고 강한 자식을 점지해 주십사고 신불에게 기원하자구 이토록 분한 것을 난 내 자식에겐 맛보여 주고 싶지않아

이마가와를 의지 않고, 오다에게 굴하지 않고 유유히 혼자서 천하를 걸어갈 수 있는 자식

히로다다는 자기 몸에 부족한 꿈을 그리며 마침내 오다이의 손을 잡았다. 

이 싸움에서 어쩌면 전사할지도 모른다. 

이마가와 편이 이기건, 오다가 그것을 물리치건 간에 히로다다는 히로다다 대로의 무인의 고집을 보여 주어야만 했다. 

죽은 은 결코 공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 어깨를 사로잡고 있다. 

히로다다는 자기의 생명을 깃들이고 있는 오다이의 몸에 애절하리 만큼 친밀감을 느끼며 아무런 부자연스러움도 느끼지 않고 오다이의 목덜미에 뚝뚝 눈물을 떨구었다. 

오다이 부탁해 이 히로다다에게 만약의 일이 있더라도 그대는 반드시 살아 줘 태어나는 자식을 위해 살아 줘

뜨거운 목소리로 속삭인 다음 입술을 풍만한 오다이의 귓볼에 갖다 댔다. 소리내어 울음을 터트리며 오다이 역시 히로다다에게 매달렸다. 

이런 경우 운다는 것이 얼마만큼 히로다다의 마음을 약하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은 누를 수 없는 커다란 감정의 물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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