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흐트러진 싸리

반응형

흐트러진 싸리

 

노부찌까는 해가떨어지기를 기다려 본성을 빠져 나갔다.

달은 아직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거실에 불이 켜지자 창밑에 흐트러진 싸리가 장지문 밖에 그려 놓은 듯이 비치고 있다. 

아버지도 이제 오래 사시지는 못한다

그는 문득 인생을 생각하면서 성의 식량 창고로 가는 문을 지나 중간 성벽 밖으로 나갔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아름답게 걸려 있고 바다로내민 서쪽 축대 아래서는 파도 소리가 부드럽게 찰싹이고 있다.

오까사끼에 시집간 오다이에게 아이가 태어난다 사람 하나가 새로이 이 세상에 나온다는것도 불가사의였지만

그 아이와 교대로 다다마사가 같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일도 불가사의였다.

백년을 산 사람이 없다. 하지만 늙은이 없는 시대도 없고 젊은이 없는 시대도 없었다. 

나고 죽고, 죽고 나고, 늘 이 세상에 사람이 넘쳐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

대관절 이와 같이 살고 주는 판결의 줄을 누가 쥐고 있는 것일까?  신?   부처?

발밑에서는 올해도 또 벌레들이 울어대기 시작한다. 갓피기 시작한 싸리꽃도 이상했고 사람에게 늙고 젊음이 있는 것도 이상했다. 호오죠니, 다께다니, 오다니, 이마가와니 하며 서로 싸워서 대관절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 살수 있단 말인가.

올해의 매미는 작년 매미가 아니듯이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이나 매미나 매한가지였다.

베는 자나 베이는 자나 땅을 뚜드리는 정확함을 가지고 다같이 이 세상을 떠 나간다.

그런데도...

식량 창고에서 북문으로 가는 돌층계를 뚜벅뚜벅 밟아 가면서 노부찌까는 형과 너무 싸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자기가 좀 지나쳤다. 형 노부모도가 오다 편에 가담하여 자기와 다다모리에게 어머니가 있는 성을 무찌르게 한다.

이렇게 생각하자 머리에 피가 왈칵 올랐다. 피는 무의식중에 생상 대한 것을 알고 있어 어리석은 싸움에 항의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다이가 낳은 자식이 어떤 운명을 가지고 태어날지는 몰랐으나 이미 그 싹은 자라고 있다. 

그것을 무사히 낳게 하고 싶다고 어디선지 줄곧 소원하고 있다. 그 소원이 형에 대한 심한 힐문으로 되어 갔다.

게다가 노부히데의 소행을 노부찌까는 좋아하지 않았었다. 신을 두려워 않는다고 아버지는 말하는데 모든 것을 너무 지나치게 힘으로 부자연스레 이룩하려 하고 있다. 

아니 그것은 문벌이나 귀족에 대한 광포한 증오로 굳어져 버린 변질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농부건 상인이건 야무사이건 되는 대로 선동하여 힘으로 천하를 잡으려 한다. 과거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지난 날의 지배자들의 백골위에 도사리고 앉으려고 초조해 있다. 노부찌까는 그 점 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과거의 권력자도 한꺼풀 벗기고 보면 역시 도덕의 가면을 쓰고 매한가지 일을 해 왔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가면은

언제나 약간의 제동기 구실을 하여 악을 눌렀다. 

그런데 노부히데는 그러한 가면마저 내동댕이치고 태연히 자기를 위해 백성을 선동하고 자기를 위해 백성을 불태운다.

형 노부모도는 그 힘에 현혹되어 오다에게 편들려고 초조해 있다. 아니. 노부찌까가 낮에 그 잘못을 설파했기 때문에

오늘 밤 지금부터 구마 저택에서 노부찌까의 의견을 들어 주겠다고 했다. 

다투어선 안된다. 조용히 설명하자

노부찌까는 바깥 해자 둑에서, 무사 집을 방문하고 오겠노라고 가볍게 말한 다음 성문 밖에 서자 다시 한번 곰곰히 머리 위 은하수의 숨결을 우러러 보았다. 

성 밖에는 바람이 불었다. 이 바람은 아마 오까사끼의 밤도 쓸고 있으리라. 문득 노부찌까의 머리에 어머니 가야인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그러자 그 가야인의 품의 가슴을 묻고 울고 있는 오다이의 모습도 보여온다.

노부찌까가 아버지 대신 오까사끼 성에 오다이를 바래다 주었을 때의 십년 만에 서로 얼싸안은 모자 세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때도 노부찌까는 인간 세상의 이상스런 비뚤어짐을 보고 망연자실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세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마비되어 버릴 듯한 환희가 있건만 어째서 세상은 한찮은 이유의 울타리를 만들어서 서로 떼어놓고 마는 것일까.

어째서 어머니와 자식이 다가서는 자연스러움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 그때부터 노부찌까의 머리에는 인간 세상에 대한 불가사의한 불신과 의혹이 쌓였다. 

영토를 유지하려고 급급하여 사는 패거리는 고사하고라도 그것을 넓히려고 약자들에게 사정없는 살육의 손을 뻗쳐 가는 데 증오와 연민을 함께 느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인 귀장도 이윽고 늙음과 함께 약자와 매한가지 죽음의 손에 안긴다는 것을 잊고 있다. 

죽음과 삶은 만인에게 똑같이 부과된 엄숙한 환희이며 가혹한 형벌이라는 것을 과연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누부찌까는 어느덧 긴따이 사의 어두운 숲을 빠져나가 논두렁 사이로 구마 저택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벌써 벼는 이삭을 알배고 있다. 발밑에서 개구리가 마구 울어댄다.

노부찌까는 또 한번 오늘밤엔 형하고 다투지 말아야지..

하고 속으로 맹세했다. 그가 느낀 인간 세상의 슬픔을 조용히 설파하여 자진해서 싸움에 참가하는 어리석은 짓을 말도록 하자

눈앞에 구마 저택의 해자가 반짝여 보이자 잠잠하게 떠오른 토담 너머에 기암을 쌓은 듯이 곳간과 나무들이 포개어져 있다. 노부찌까는 품속에서 두건을 꺼냈다. 이제 과히 덥지는 않았으며 살갖의 땀도 가시어져 있었다. 

얼굴을 싸고 나자 노부찌까의 발길은 빨라졌다. 담 아래 버드나무 밑을 부지런히 누벼 나가면서 곰팡내가 풍기는 뒷문으로 돌아갔다. 

약속했던 대로 거기에는 굵은 밧줄로 도개교가 내려져 있었다. 곰팡내는 거기에서 나는 듯했다. 

풍덩 하고 개구리가 소리를 내며 해자로 뛰어들자 잠잠하던 수면에서 별이 스르르 북녁으로 흘러갔다. 

노부찌까는 살짝 주위를 돌아보고 급히 다리를 건넜다.

그는 이 저택에 오꾸니라는 처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집 주인이 평생을 신에게 종사시키겠노라고 작정한 다음 세상을 떠났다는 궁중 깊숙히 자라난 박꽃처럼 아름답다......는 소문도 누구한테선가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처녀가

형 노부모도에게 거칠게 꺾인 다음 불같은 사랑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한 성 성주의 아들이 성밖에 여자를 갖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시대였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너자 노부찌까는 형이 말한 대로 중문을 찾아 두 번씩, 세번 똑똑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문이 스르르 열리며

노부모도님?

나직이 헐떡이는 소리와 함께 밤공기를 왈칵 사향 향기가 꿰뚫어 왔다. 

노부찌까는 빨아들이듯이 다가오는 여자의 숨결에서 심상치 않은 기척을 느끼고 수상쩍게 여겼다.

밤이라 똑똑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시녀나 하녀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어슴프레 떠오른 하얀 얼굴과 부드러운 자태에 야릇한 기품을 풍기고 있다. 

이 저택의 처녀 오꾸니가 아닐까

신에게 종사하는 무녀를 이톡록 자유자재로 부린다면, 형이 이 집에 뻗치고 있는 솜씨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구마의 도령은 내손 안에 쥐었어

그렇게 말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자만심이 아니라 정말 나미따로를 심복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부찌까의 뒤에서 여자는 살며시 중문을 닫았다. 그러고 나서 매달리듯이 오부찌까의 손을 잡아 두 손바닥 사이에 끼워서 가슴 밑에 품듯이 걸어나갔다. 

오꾸니님이요....

노부찌까는 자기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은 부드러운 팔을 느끼자 눈이 아찔했다. 손목은 뛰는 가슴에 닿고 있었다. 

네  하고 오꾸니는 걸으면서 대답했다.

기다리다 지쳐서...

죽을 것만 같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숨결 때문에 끊어졌다. 

만약 그렇게 말했더라면 노부찌까는 사람을 잘못 본 것이라는 것을 알았겠지만, 말의 부족 은 점점 더 젊은 노부찌까를 어리둥절케 했다. 

신에게 종사하여 세상을 모르고 자라 왔다고 들었는데, 세상에 흔히 있는 예법이나 수줍음과는 다른 세계의 이것이 예법인 것일까? 음란한 것과는 다른 교태가 교태와는 다른 두근거림이 그대로 곧장 혈관으로 울려 온다. 

사잇문을 둘 지나갔다. 불이 켜지지 않은 등롱이 있고 돌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도 싸리가 흐트러져 있구나 하고 느꼈을때 툇마루 끝에서 조그맣게 소리를 내며 홈통의 물에 별의 반짝임이 보였다ㅏ. 

칼을.

하고 오꾸니는 말했다. 허나 그 손은 여전히 노부찌까를 떠나지 않고 몸을 비틀며 검은 머리를 그냥 가슴에다 묻었다.

노부찌까는 칼에 손을 댔다. 여자의 방에 들어갈 때는 칼을 내주는 것이 예의였다. 그러나 요즘은 처음 찾아간 집에서는 소홀히 내주지 않는 관습도 통용되고 있다. 지금 오까사끼의 부하들은 칼을 찬 채 측간에 들어가 

이것이 난세의 마음가짐이오

예사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었다. 

노부찌까도 젊은 혈기가 없었던들 혹은 칼을 내주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허나 오꾸니의 동작은 그의 이성을 야릇하게 만들었다. 

노부찌까는 오꾸니가 가슴에서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칼을 내주었다. 

두 손으로 받아든 오꾸니는 그것을 받쳐들고 부지런히 툇마루에 한 발을 올렸다. 

그 순간. 

홈통 물이 떨어지는 이끼 낀 돌 뒤에서 긴 창이 홱 내질렀다. 아무 데도 공기의 움직임도 없고 소리도 없었다. 

으음

노부찌까는 나직이 신음한 다음

오꾸니님......오꾸니님....

하고 나직이 부르자 비로소 정원의 싸리와 가는 대나무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노부찌까는 허벅지를 찌른 창대를 꽉 움켜쥔채

오꾸니님, 칼을 

하고 또 말했다 . 오꾸니는 의아한 듯이 

칼을요?

하고 반문한 뒤 비로소 세면대 너머에 있는 사리밭 속의 희미한 소란을 깨달았다. 그처럼 습격하는 쪽도 당하는 쪽도 조용하였다. 

오꾸니는 달려와 칼을 내밀며 혹시 괴한이 아닐까요.....

떨리는 소리로 물었으나 답은 없었다. 오꾸니가 받쳐든 칼에 손이 닿았다. 그때 시커먼 그림자가 받쳐든 칼에 손이 닿았다. 

그때 시커먼 그림자가 둘, 귀신처럼 세면대 뒤에서 달려나왔다. 윙 하고 공기가 울린 것은 그 그림자 하나에 노부찌까가 칼을 내리친 소리였고 다른 하나의 그림자는 홱 물러서서 태세를 갖추었다. 

오꾸니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살기만이 느껴져서 한 순간 공포에 온 몸을 떨려

괴한!

하고 외치려 했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을 잘못 보지 마라

비로소 노부찌까는 두건 속에서 나직이 말했다. 

나는 시모쓰께노가미 노부모도

형의 말이 생각나서 형 이름을 댔다.

그때 벌써 노부찌까의 눈은 상대방의 모습을 어둠 속에서 보고 있었다. 검정 옷차림이 아닌 듯했다. 

닌자들이 잘 사용하는 검정빛 나는 홍색인 듯했다. 움직이니 그대로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물러가지 않는 것을 보니 사람을 잘못 본게 아닌 모양이로군

그래도 상대는 나무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형이 저격 대상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이 상대는 누구일까?

노부찌까는 그것이 수상하였지만 동시에 심한 증오가 왈칵 치밀어올랐다. 

한 사람의 무기는 확실히 칼이었다. 다른 하나는 노부찌까에게 창을 빼앗기고 소도나 아니면 단도 같은 것을 가직고 태세를 취하고 있는듯했다. 

허벅지만 찔리지 않았으면 노부찌까는 틀림없이 성나는 대로 쳐들어갔을 것이다. 과히 피는 나오지 않았지만 찔린 자리가 곧장 쑤셔서 아파왔다. 사람을 부르게 하지 않은 것은 그 상처에 대한 젊은 노여움과 오꾸니에 대한 허영이었다. 

칼을 꼬나든 하나가 발소리도 내지 않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야릇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뒤에 있는 차양이 딸깍 하고 울리며 또 하나의 모습이 스르르 앞에서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 위험해요 누구 좀

하고 오꾸니가 외쳤다.

그녀는 검은 실같은 것이 한 줄기 슬쩍 머리위로 뛰어 넘어간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뒤에 주루룩 하고 차양 위에서 댓돌에 물방울이 튀겨왔다. 노부찌까의 눈은 그 그림자를 놓치지 않고 칼을 비스듬히 쳐올려 상대의 어딘가를 베었던 것이다. 

피보라의 양으로 볼 때 그것은 상당한 반응이었으나 차양 위에서는 여전히 신음 소리 하나 들려 오지 않는다.

이때 앞에 있는 칼날이 살짝 움직였다. 노부찌까는 왼편으로 비켜서며 바른편 칼을 비스듬히 후려쳤다.

바로 이 순간에 차양 위에서 고양이처럼 검은 그림자가 노부찌까에게 덤벼들었다. 

으악!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라 여겨지지 않는 처참한 짐승의 단말마 소리와 같았드며 동시에 집안에서 부산한 발소리와 함께 등불이 달려오고 있었다. 

달려온 맨 앞 사람이 오빠인 나미따로라는 것을 알자 오꾸니는 희미하게 정신이 아찔해졌다. 

오 누가 베였구나.

노부모도님입니다. 노부모님이 살해되었습니다. 

뭣이! 노부모도님이.....

그러한 소리가 아득히 귓전에 들리고 마음을 스쳐간 다음

간호를 해라. 노부모도님이다....

사람들이 다른 하나의 부상자를 날라갈 때까지 의식은 정신이 들고 보니 누가 매어 주었던지 웃 위로 허벅지를 묶은 사람이 혼자 잠잠하게 마루 끝에 뉘여지고 어느덧 그의 몸에 달빛이 하얗게 비치고 있었다. 

오꾸니는 덤벼들 듯이 그에게 매달렸다. 

노부모도님 노부모도님....

맨 먼저 가슴에다 귀를대고 다음에 코에다 입술을 댔다. 수치를 잊고 상대의 생존을 확인하려 하는 것이었다. 

맥박은 있었다. 호흡도 갸날프게 느껴졌다. 

그렇건만 생대는 꼼짝달싹도 하지 않는다. 

노부모도님.......노부모도님.......

오꾸니는 그것이 살아 있는 인간의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꼼짝 않는 자세임을 판단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오늘 밤의 사건은 그녀에게 있어 하나하나가 모두 뜻밖이었다. 만약 이대로 노부모도가 죽는다면 자기도 뛰따라 죽지 않고는 있을 수 없을 만큼의 비탄이었다. 

돌아가셔서는 안돼요. 노부모도님 . 저도 저도 같이.......

오꾸니는 먼저 묶어 놓은 허벅지의 상처를 조사했다. 칼맞은 상처와는 달라 출혈은 적었지만 상처의 살이 허였게 부어 있었고, 그래도 살갖은 피에 젖어 있었다. 

상대에게 의식이 없는 줄 알고 한 행위였으리라 다짜고짜 오꾸니는 그 피에 입술을 갖다 댔다. 아니 그것은 입술이 아니라 혀로 빨면서 매달리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처녀의 대담성을 느낄 때, 아무리 노부찌까라 할지라도 그것이 보통 감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 여자는 형을 애타게 사모하고 있다. 

형이 이미 총애의 손길을 뻗은 사이임에 틀림없으리라

허나 그것보다도 수상쩍은 커다란 의혹이 지금 노부찌까를 사로잡고 있다.

오꾸니가 자기를 형이라 착각을 하는 수가 있다. 할지라도 나미따로까지가 잘못 본다는 것은 의아스러웠다. 

닌자 두 사람에게 끼여서, 하나가 앞에서 쳐들어오는 순간 하나가 차양 위에서 덤벼든다는 것은 예기할 수가 있었다. 

몸을 피하여 반대로 상대의 가슴을 푹 찔렀건만 과연 닌자라 단말마의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그래서 으악! 하고 자기 쪽에서 찔린 것처럼 가장하여 다른 하나에게 칼질을 했던 것인데, 그소리를 듣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형이 달려오지 않는 것도 수상쩍었다.

어쩌면 형이 안 온 것이 아닐까......?

그 의심이 노부찌까를 점점 더 의아하게 만들었다. 

형이 나를 속였구나.......

오꾸니는 이번에는 노부찌까의 목을 끌어안고 복면한 위에서 마구 입술을 갖다댔다.

노부모도님 , 돌아가셔선 안돼요. 먼저 돌아 가셔선 안돼요.

오꾸니의 행위는 점점 더 대담하게 점점 더 미칠 듯한 광태로 되어 갔다. 달빛마저 귀찮았던지 노부찌까의 몸을 그늘로 썩 끌어들이자 이미 그 태도는 희롱인지 비탄인지 알수 없을 지경이었다. 

서로 맞닿는 온 몸, 여느 때 같으면 젊음이 견뎌낼 수 있는 한도를 훨씬 초월하고 있건만, 차마 오늘의 노부찌까에겐 상처도 젊음도 초월하여 아픈 것이 있었다. 

나미따로가 형의 애인에게 이렇토록 자기를 맡겨 둘리가 없으며, 그 역시 완전히 자기를 형이라 생각하고 있다. 형이 와 있지 않은 증거였다. 

마침내 형은 나를...

그것은 마땅히 불같은 분노로 변할 터이건만 오늘의 노부찌까는 칼날이 살갖에 닿은 것 같은 차가움을 느끼고 있었다. 

오는 길에 인생 애증의 무의미함을 생각하며 왔던 탓일까? 아니면 눈앞에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 간 닌자의 일생에 대해 무상함을 느꼈던 탓일까? 틀림없이 형의 지시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찡하게 마음이 우울해졌다. 

일단 베려고 생각하면 베지 않고 두는 형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애타게 사모하는 여자를 미끼로 삼는다는 것은 너무나 처참하다. 오꾸니는 어느덧 노부찌까의 두건을 벗기고 있었다. 자기의 생명을 남자에게 통하게 하려고 찰싹 매달려 울고 있다. 이제 와서 만약 노부찌까가 형 노부모도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 처녀는 어떻게 될 것인가

노부찌까는 거기서 갑작스런 불길한 것에는 이겼지만 거기서 아직 도 오꾸니의 당황을 위로할 길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손길을 뻗어 벗겨진 두건을 움켜 쥐었다. 하다못해 머리라도 싸매려고 생각했던 것인데 그것이 상대방보다 자기를 위로하는 결과가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노부찌까가 움직이자 

어머나

하고 오꾸니는 소리를 지르면서 또다시 매달렸다. 이 처녀 역시 처음부터 상대방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정신이 드셨어 정신이 드셨어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축축하게 눈물에 젖은 볼을 가지고 마구 사나이의 가슴에 밀어대 온다. 

노부찌까는 한 손으로 재빨리 얼굴을 쌌다

좌우간 이 자리에서 떠나자. 그리하여 형과 대결할 작정으로 성에 돌아가던가. 아니면 이대로 종적을 감추느냐 하는 것을 결정해야만 한다. 달은 점점 더 밝아 그늘의 어두움을 짙게 하였다. 얼굴을 싸고 이대로 떠난다면, 어쩌면 상대는 사람이 틀리다는 것을 모를지도 모른다. 

오꾸니님

나는 그대에게 거짓말은 못하겠오

난 노부모도가 아니오 노부찌까요

예?

놓아 주시오 난 형의 계략에 넘어갔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형이 말한대로.....이 저택으로 온거요

형은 여기서 나를 죽일 계략을 꾸미고 있었던 거요

오꾸니의 몸은 아직도 노부찌까에게 매어달린채 깜짝 놀라 커다랗게 물결쳤다

오꾸니의 손이 노부찌까의 몸을 살며시 떠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처음에 그 말을 노부모도의 장난인 줄 생각한 모양이다. 

매어달린 채로 있는 오꾸니의 자세에 질려서 

오꾸니님 놓아 주시오 사람이 틀리오

허나 나는 그대의 오늘 밤의 간호를 잊지는 않겠소

듣고 보니 그 목소리는 노부모도를 닮기는 했으나 확실히 약간 더 젊ㅇㅆ다. 게다가 노부모도는 오꾸니의 이름을 거칠게 언제나 님자를 붙여서 부르지를 않았다. 

오꾸니는 온 몸의 피가 얼었다가 다시 수치의 불길이 되었다. 잠자리를 같이한 상대인 줄 알고 희롱을 하다가...사람이 틀렸다 해서 깨끗이 끝날 일이 아니었다. 

대관절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그 결심이 희미한 형태를 취할 때까지 손도 뗄수가 없고 숨도 쉴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눈도 뜰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감을 수도 없는 안타깝고 커다란 놀라움이었다. 노부찌까에 대한 수치라기보다 

그것은 노부모도에 대한 부끄러움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이기도 했다. 

이같은 경솔함을 과연 노부모도는 용서할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즉시 답은 죽음으로 이어졌다. 

죽어야 한다...죽어서 실수를 속죄해야지....

이러한 각오가 되자 비로소 상대방 가슴에 돌린 손을 풀 수가 있었다. 따라서 노부찌까가 형의 계략에 속아 여기에 왔다는 말이며, 그런 일을 시킨 노부모도의 자기에 대한 무참함까지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손을 풀자 노부찌까는 마음을 놓았다. 얼른 그 자리에 고쳐앉으려다가 깜짝 놀라 허벅지의 상처를 느낄만큼 추한 삶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고 이를 악물며 일어섰다. 

과히 깊은 상처는 아니었으나 싸움터에 있을 때의 부상의 경험과는 다른 아픔이 뼈를 쑤셨다. 

그는 다리를 절뚝거는 약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성큼성큼 달빛 속으로 걸어나와 마루에서 한 발을 내렸다. 그때 안의 어둠 속에서 드르륵 장지문 소리가 나더니

노부찌까님

누구요?

이 집 주인

나미따로님이오.

나미따로는 그 말에 답하는 대신

위험하오 하고 조용히 말했다. 

무엇이 위험하오? 아직도 잠복한 자가 있단 말이오?

아닙니다. 노부찌까님 이대로 살아 있다간 위험하오 나도 좀 화가 나는군요

무슨 일이?

어떤 분의 잔혹함 정을 모르는군요

여기서 나미따로의 말에 힘이 주어지며

상대의 계략에 넘어가 주는 것이 상책이겠지요 다행히 시체가 나 있으니 미즈노 노부찌까 무사에  있을 수 없는 사나이로 구마무라의 촌색시에게 내통하다 목숨을 잃다.이렇게 선전케 하면 어떨까요? 그렇지 않고는 위태롭소

노부찌까는 한 발을 내려 놓은 채로 슬며시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꾸니는 방 한 구석에 몸을 숨긴 채 꼼짝도 하려 하지 않았다. 

달은 점점 더 밝아 왔다. 툇마루에 한 발을 걸고, 육친의 형에게 계략을 당하여 죽이느냐 죽느냐의 증오의 칼을 받은 노부찌까의 모습은 그림처럼 은빛을 퉁겨내고 있다. 

이 몇 초 동안에 그는 평생의 갈길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닌자를 해치운 솜씨 훌륭하더군요

나미따의 말은 다시 잠잠해졌다. 

그 솜씨라면 형님도 해치울 수 있겠지요. 허나 나는 인정하지 않지요 죽이는 자는 이윽고 죽는 법이니까

 사람의 고집이란 나만이 있는 것이라고 집념하는 아주 작은 거품에 지나지 않으니까

노부찌까는 여전히 잠자코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칫하면 자기 자신이 그 달에 빨려 들어 갈 듯한 야릇한 외로움이 줄곧 가슴 속에서 오간다. 

어떨까요 상대방 생각대로 노부찌까님의 시체를 여기서 흙으로 돌려보내면?

그렇다면 그 닌자의 시체를 나처럼 꾸며서 말인가요?

그걸로 노부모도님은 일이 성사된 줄로 아시겠지요

음 

노부찌까님을 죽이고, 오꾸니에게는 부정의 누명을 씌워서 아니 어쩌면 이 구마 저택에 다닌 자는 노부모도가 아니라 첨음부터 노부찌까였고......

소문 낼 작정이었을까요?

그렇게 나는 생각되는군요

여기서 나미따로는 소리를 낮추어

만약 노부찌까님이 이대로 흙으로 돌아가시겠다면, 나도 오꾸니를 함께 잠들게 하겠습니다. 

뭣이 오꾸니님을....

나미따로는 이렇게 답한 다음 이번에는 말투를 싹 바꾸어 노래라도 부르듯 말을 덧붙였다. 

이즈모 나라에 아는 사람이 있씁니다. 

히노까와에 있는 신사 대장장이인데 신분은 천하지만 아는 사이이지요 성은 고무라 이름은 사부로자

노부찌까는 잠자코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오꾸니를 보낼 곳인 모양이었다. 혹시 갈 곳이 없다면 노부찌까도 일시 거기를 의지하면 어떨까 그렇게 말하는 수수께끼처럼 드렸지만 노부찌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제사 뜰로 내려섰다. 주위는 비내리듯한 벌레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고맙소 당신 말로 생각이 결정되었소 

흙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일단은

몸조심하시오

노부찌까는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벌레가 울음을 멈추었다가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뒷문께에 매어 놓은 개가 요란하게 젖어대기 시작한 것은 노부찌까가 무사히 중문에 이르렀다는 증거였다. 

삐이걱 하고 도개교가 들리는 소리를 듣자

오꾸니 

하고 나미따로는 방 한 국석의 어둠 쪽을 보고 불렀다. 

한탄할 것은 없다. 뜬 세상의 사람 마음을 보았을 따름이다. 가엾은 ....조그마한 사람 마음을 보았을 따름이다.알겠느냐?

한탄할 것은 없어

달은 점점 더 밝아 오고 싸리 잎 끝에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도개가 들리고 나자 주위에는 벌레 소리 뿐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