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진주만 공습 !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이유는 무엇인가!

반응형

태평양 전쟁원인에 대해 문서가 공개된 이유로 일본 제국은 미국과 전쟁을 결정한다. 이제 일본은 전쟁을 시작할 방법을 두고 논의를 벌이는데, 이때 연합함대 총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전쟁계획을 제안한다. 야마모토의 주장에 따르면 ' 그나마 현실적으로 미국과 싸울 방법'으로 화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해서 , 거기에 기지를 둔 태평양 최강의 함대인 미국 태평양 함대를 전멸 또는 최소한 괴멸 직전 상태로 몰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미국이 힘을 회복하는 동안 일본에게 없는 석유를 얻을수 있는 동남아를 점령하고 섬들을 요새화해서 미국의 공세전력을 소모시켜 최종 결전에서 그들을 격멸하고 어떻게든 평화협상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단, 이들이 놓친 점이 있었으니 독일이 1,2차 세계대전을 말아먹은 계기인 전선이 이중화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차피 둘 사이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는 상화이었고, 미국은 유럽 전선의 상황이 정리되는대로 태평양 전선으로 모든 여력을 돌릴 예정이었으며 일본의 점령지는 절대로 그대로 놔둘 생각이 없었다. 그 목적의 달성을 위한 태평양 함대의 건조도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라 일본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나든 유럽 전선이 결착지어지기 전에 미국과의 전쟁을 시작한 뒤, 적절히 협상하여 끝내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의 유럽 전선은 추축국이 매우 유리한 형세였으므로 그대로 종전 된다면 러시아와 부가침조약을 맺은 일본은 미 대륙을 고립시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혹여라도 추축국이 패배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병력이 분산될 때 결착을 지어야 유리한 것은 자명하다. 즉, 미국과의 결전 자체는 충분히 정치적이며 전략적인 결단이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소련이 모스크바까지 밀린 상태로 독일이 소련을 상대로 승리를 눈앞에 둔 것처럼 보였고, 미국의 경제력이 초반에 입은 타격을 전부 복구하고도 남아돌 것이라고 당시로서는 예상하기 힘들었다.

 

 

 

지형적 특성상 서로 간에 타격을 주려면 해군이 필수불가결했고 반대로 이것만 없으면 일본은 상당한 기간 동안 식민지의 점령을 공고히 하고 국제사회에서 이를 인정받을 기간을 벌 수 있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적어도 적이 준비를 마치기 전에 적이 나를 공격할 유일한 수단을 미리 잘라놓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즉, 나를 공격할 도구인 적의 팔다리를 잘라놓고 회복되기 전에 결정적 타격을 주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설사 적이 협상할 마음이 없다고 하더라도 전면전에서 상대방의 전력을 줄여놓는 것은 초반 전세의 승기를 잡고 후에 교착상태가 되었을 때 좀 더 우위를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히라타 신사쿠 제독이 1930년에 출간한 '우리가 싸운다면' 이란 책에서 일본이 먼저 미국의 화와이를 공습한다면 미군의 사기가 떨어져 미 해군이 괴멸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런 사례가 당시 일본 군부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구상의 전제조건인, 미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상당히 의심스럽다. 일단 미국이 일본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본격적으로 일본과 한 판 붙어보겠다는 생각까지는 아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 정치인들은 일본보다 유럽에 더 관심이 있었고 이는 심지어 진주만 공습을 당한 이후에도 유럽 전선을 우선한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었다. 문제는 일본이 중일전쟁으로 설치는 것을 미국이 계속 내버려둘 생각도 없었고 침략으로 먹은 이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적인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를 했는데 일본 군부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물론 일본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였다면 이쯤에서 미국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물러났겠지만 당시 일본은 그렇게 멀쩡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독일과의 전쟁에도 주저없이 총력전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후 히틀러가 일본의 동맹국으로서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을 전면전으로 끌어들인 것은 진주만 공습의 결과 였다. 아무리 미국의 국력이 대단하더라도 총력전 태세 없이는 국력을 동원하는데 한계가 있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국민 대부분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총력전 태세로 전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그 역활을 일본과 독일이 해낸 샘이다.

 

특히 적당히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 후 협상으로 전쟁을 끝낼 생각이었다면 진주만 공습은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할수 있다. 미국이 협상에 응할 것인가 여부는 물론 전세에도 좌우되지만, 국민감정에 따른 여론에도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전쟁에서의 유불리만을 고려했을 뿐 미국의 일반 국민 및 정치인들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건 협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 능력이 없다면 진주만 공습과 같은 방식을 협상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되었다.

 

러일전쟁이"싸대기를 맛깔나게 후리면 감동먹서 나와 협상하는"사례로 제시되기도 한다. 1904년 일본은 국력이 3~5배 이상 차이가 나는 러시아 제국을 상대로 러일전쟁을 벌였다. 유리한 전장상황을 배경으로 1905년 미국의 중재에 힘입어 포츠머스 조약을 맺었고 조선과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전쟁 당시 모스크바까지 공격할 계획은 전혀 없었고 인근인 블라디보스토크도 전장이 아니었다. 주 전장은 만주와 대한해협으로 국한되었다. 일본은 이 러일전쟁을 주목했고 그 대상이 미국과 태평양으로 변경되었으며 목표는 동아시아로 확대된 것이다.

 

 

https://yeejun1412.tistory.com/316

 

머지포인트가 뭐고 머니 머지포인트 먹튀논란

2019년 부터 존재했던 문화상품권 비슷한 사이버포인트? 판매사이트이며 이 포인트를 사용하여 구매하면 일정의 할인된 금액(20~26%)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제도있는 세일즈포인트라고 생각

yeejun1412.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