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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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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역사

 

 

 예전부터 대만에는 남방중국계, 동남 아시아계 민족이 이주해서 살았다. 대만이 역사서의 기록에 나타난 시기는 3세기의 삼국 시대로, 7세기의 수나라 역사서에는 '유구국'이라는 명칭이 보이는데, 대만을 지칭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구국'은 오키나와를 지칭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유구는 현재 오키나와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옛날에는 오키나와에서 대만까지의 넓은 범위를 포함해 유구를 비롯한 도우쇼 섬들 전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실제로 오키나와인들과 대만인들의 왕래는 빈번해서 대만과 오키나와는 경제적으로 하나의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만이 중국 영토의 일부라는 생각은 적어도 고대 중세에는 없었다. 

 

  13세기, 원나라 때에 대만은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원에 복속되었다. 명나라 때는 왜구가 대만을 일시적으로 지배했다. 17세기가 되어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면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유럽 선박이 출현하자 대만은 해상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달았다. 일본에 전해진 대포나 기독교도 아마 대만을 경유한 것이 아닐까 여겨지고 있다.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가 열리면서 대만 지배를 결행했고, 1608년과 1616년 두 차례에 걸쳐 대만에 군사를 파견했지만 실패했다. 

 

그 후 1624년에 네덜란드가 대만을 점령했다. 네덜란드는 대만을 필리핀 마닐라와 중국 마카오의 중간 위치하는 전략 거점으로서 중요시했다. 

 

 

 1644년, 명나라가 백성의 반란으로 멸망하고 만주인이 세운 청나라가 들어섰다. 이에 명나라의 황족과 신하였던 사람들이 반청복명(청나라에 반대하고 명나라를 되찾자)의 기치를 내걸고 청나라에 저항했다. 명나라의 신하였던 정성공은 청나라에 대한 반격 거점을 확보하려고 대만을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를 몰아낸 후 1662년에 대만을 점령했다. 

 

 대만이 한족에게 지배당하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정성공이 죽은 후에도 그 후손들이 20년에 걸쳐 청나라에 저항했지만 결국 청나라 황제인 강희제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청나라는 푸젠성의 통치 아래 대만을 편입시킨다. 현재, 중국은 그때를 근거로 자신들의 통치가 센가쿠 열도까지 뻗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만은 청나라에 편입된 후, 맞은편에 위치한 푸젠성, 광둥성에서 이민이 급증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19세기 후반에 영국 혹은 프랑스가 대만의 연안 지역을 지배했지만, 최종적으로는 1894년에 청나라가 청일전쟁에 패하면서 다음 해인 1895년에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대만은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고, 일본의 지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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