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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된 폭군, 수나라 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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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된 폭군, 수나라 양제

 

 

 

 

 

수나라 2대 황제인 양제는 대운하를 건설하여 화북과 강남을 물길로 연결했다. 이 대운하는 남북이 정치적으로 통합되었을 뿐 아니라,경제적으로도 통합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상징이었다. 

 

 폭군으로 유명한 양제는 대운하 완성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운하 건설에 고생한 백성을 치하하기는커녕 호화로운 뱃놀이를 즐겼다는 등 대단히 오만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과장된 이야기라고 봐야 한다. 쿠데타로 수나라의 정권을 탈취한 당나라에 의해 날조되었다고 의심이 된다. 

 

 양제는 대운하 건설을 비롯해 율령제라고 부르는 중앙집권적인 관료제를 정비하여 국력 증대에 힘썼고 또한 경제를 발전시킴으로써 백성의 생활을 향상시켰다. 더불어 양제시대에 균전제를 실시함으로써, 부유한 호족이 소유한 대토지를 몰수해 백성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좌파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양제는 '과거'라는 관료등용 제도를 실시했다. 과거는 필기시험 점수로 합격을 정하는 열린 등용 제도로,인맥이나 정치적 배경이 없는 백성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과거는 공자의 가르침인 유교와 시짓기를 주요 시험과목으로 삼았기에,합격자의 대부분이 유학이나 시 짓기에 능한 강남의 중국인이었다. 양제는 과거를 실시하고, 유능한 한족을 대량으로 등용함으로써 남부의 지지를 얻어 남북협조의 정치적인 틀을 구축하려고 애썼다. 

 

 이처럼 양제의 정책은 뛰어난 데다 제대로 기능했지만, 급진적인 중앙집권주의에 반발하는 저항 세력과 결탁한 수나라 중신인 이연과 아들인 이세민 부자의 배신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양제가 궁정을 비우고 강남을 시찰하는 사이, 이연 부자는 장안을 점령해 실권을 장악하고 618년 당나라를 세웁니다. 양제는 그해 암살당했다. 

 

 이처럼 부당한 쿠데타가 있었기에 이연 부자는 양제를 부자연스러울 만큼 억지로 폭군 취급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쿠데타가 백성을 위한 것이었음을 정당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양제는 본디 이름이 양광인데, 사후에 이연 부자에 의해 양제라는 달갑지 않은 시호를 받았다. 양은 '하늘을 거스른다'는 의미로,그 이후 폭군의 이미지가 정착되었다. 

 

역사는 늘 승자,강자에 의해 날조되곤 한다. 하지만 양제의 정책은 별 문제가 없었기에 당나라도 수나라의 율령제, 과거제를 그대로 답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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