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도령 철종의 등극
양자로 대를 잇게 하자면 혈통만 동일하다 해서 아무나 입양시키는 게아니고 부자간의 항렬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동안 당파 싸움과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 때문에 왕손을 모두 역적으로 몰아 죽였기 때문이었다.
강화섬에 숨어 사는 이원범은 항렬로 따지면 헌종의 7촌 아저씨뻘이었다.
여기서 권돈인은 아주 촌수는 멀더라도, 덕흥 대원군의 종손 이하전이 총명하니 그가 뒤를 잇게 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맞서 안동 김씨의 의견에 동조하는 정원용은 이원범을 맞이하자고 하였다. 결국 안동 김씨의 주장대로 항렬이고 무엇이고 가릴 것 없이 강화 도령 이원범을 모셔 오기로 하였다.
총명한 사람을 왕위에 오르게 하면 자신들의 세도 정치가 위협받기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강화 도령 이원범의 출신을 살펴보면 조부 은신군이 역적으로 몰려 죽었고, 은신군의 큰 아들 상계군도 역시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 한 사람이 역적의 누명을 쓰면 삼족이 역적으로 몰리는 세상인지라 상계군의 동생 또한 역적의 아들이었고, 삼형제 가운데 큰 아들 원경도 역적으로 죽고, 둘째 아들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셋째 아들 원범만이 천애고아가 되어 강화섬에 살고 있었다.
10여 세의 원범은 완전히 농민이 되어 숨어 살았다. 19세가 되도록 글을 배우지 못했으며, 결혼도 못하고 나무하기와 짚신 삼는 일 등 농사일밖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대왕대비 순원 왕후의 명으로 원범은 덕완군에 봉하여 인정전에서 즉위하였다. 왕으로 앉히기 위해 강화도로 모시러 갔던 사신들이 철종을 만나 왕으로 모신다 하여도, 왕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철종은 겁이 나 달아났다. 때문에 설득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강화 도령 이원범이 순조의 뒤를 잇자 순원 왕후가 수렴청정 하게 되었다. 농사일밖에 모르는 철종이기에 왕후가 정치를 도맡았다. 2년 후 김문근의 딸을 철종비로 맞이하니 정권은 김문근의 손으로 넘어갔다.
김문근 일가의 세도는 당당하였다. 훈련대장은 김문근의 조카 김병국,대제학은 김병학, 좌찬성은 김병기, 시교는 김문근의 아들이 차지하여, 다른 사람이 얼씬도 못하는 철옹성을 형성하였다. 정치는 김씨 일가의 손에서 놀아나고, 철종은 궁녀들의 치마폭에서 놀아났다. 나라의 정치는 부정부패가 점점 심해만 갔다. 철종은 궁녀와의 사이에서 아들과 딸을 많이 않았으나 일찍 죽고 말았다.
왕은 처음 강화도에서 올라왔을 당시는 건강한 농부였지만 궁녀들의 치맛바람에 황음이 날로 계속되었음인지, 이제는 아주 쇠약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아들을 낳아 기르지 못하는 것이 김문근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 철종은 양자라도 하여 세자를 책봉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철종에게는 사촌이 있어 사촌의 아들인 당질이 있었기 때문에 철종의 의중은 이 당질로서 세자를 삼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형편으로는 철종의 의사야 어쨋든 김씨들 좋을 대로 처리하는 판국이었다.
김씨들끼리도 암투가 이어졌다. 결국 그들의 의견은 왕가의 세력이 강성해지면, 자기들 세도 정치에 장애물이 된다는 데 의견을 모아 종친 가운데 먼저 똑똑하고 인망이 있는 사람을 제거하기로 하였다. 첫째 제거 대상이 철종 대신 순조의 뒤를 잇게 하자는 물망에 올랐던 이하전이다. 김씨 일가들이 이하전을 역모로 몰아 죽이니 이것을 본 종친들은 벌벌 떨고 숨어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