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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가는 선조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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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가는 선조 임금

 

신립의 패전 소식이 전해진 4월 29일 밤의 이야기다. 대신들이 빈청으로 들어가 보니, 선조 임금은 초췌한 모습으로 동편채 땅바닥에 거적을 깔고 펄썩 주저앉아 있었다. 

 

영의정 이산해가 아뢰었다. "사세가 이에 이르렀사오니, 성상께옵서 잠깐 파하시와 평양으로 납시는 게 마땅한 일로 아뢰오." 영의정에 말에 임금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도승지 이항복이 어전에 부복하고 아뢰었다. "신 이항복 아뢰오. 급히 서편으로 길을 취하시와 명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시어 충주 이남의 땅을 회복하시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옵니다."

 

그제야 선조임금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중신들의 의견에 따라 서울을 떠나 평양으로 갈 준비를 하느라 대궐 안에서는 밤을 꼬박 새웠다. 도승지 이항복이 촛불을 들고 앞에서 인도하였다. 

 

병조판서 김응남이 호위해 갈 군사를 모집하려 했으나,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길이 없었다.  한참 만에야 임금은 말을 타고, 중전과 김귀인 그리고 훙궁들이 가마에 올랐다. 날은 어둡고 비까지 억수같이 내려 앞을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항복이 촛불을 들고 앞에서 인도 하는데, 비에 촛불이 흔들려 길을 제대로 밝힐 수가 없었다. 

 

 

대궐문 앞에서 수십 명의 서리들이 모여 있다가, 상감의 행차를 발견하자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상감, 서울을 버리고 어디로 가시오? 백성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시오?" 

 

어떤 자는 팔뚝을 걷어붙여 내두르는 사람까지 있었다. 일행이 돈화문을 나와 경복궁에 이르니, 양편 길가에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돈의문을 지나 무악재에 이르렀을 때 화광이 충천하여 그 쪽을 바라보니. 선혜청 곡식 창고에 불이 붙어 타고 있었으며 뒤이어 경복궁, 창덕궁에도 불길이 치솟았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데도 서울 장안은 온통 불바다로 환했다. 왜병이 쳐들어오기 전에 한양은 이미 잿더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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