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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상륙잔전과 고종석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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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상륙잔전은 한국전쟁 당시 수세에 몰렸던 국군이 단독으로 시행한 상륙작전으로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개시한 북한 공산군은 개전 후 불과 사흘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8월 중순에는 포항,대구,마산 방면으로 압박을 가하면서 최종목표인 부산을 향해 총공격을 시도하였다. 이에 국군은 미국을 비롯한 16개 참전국의 지원을 받아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결사항전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때 마산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던 북한군은 국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딛혀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거제도를 통해 마산,진해, 부산방면으로의 진출을 꾀하였다. 이를 위해 북한군은 8월 15일 북한군 7사단 예하 증강된 1개대대 650명을 투입하여 거의 무방비상태에 있던 통영을 먼저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하였고 대한민국 경찰 병력의 소규모 저항을 무력화 시킨뒤 공격 개시 이틀만인 8월17일 새벽 1시경에 통영 시가지를 완전 점령한 상태였다. 


통영이 점령 위기에 놓이게 되면서 8월 16일 해군참모총장이던 손원일제독은 마산 진동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해병대 김성은 부대로 하여금 거제도에 상륙하여 북한군의 거제도 진출을 좌절시키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김성은 부대장은 현지 상황을 파악한 뒤 몇백명 되지 않는 인원으로 거제도를 방어하는 것 보다 통영으로 직접 상륙하여 적을 격멸시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다, 해군본부(당시 해군통제부)의 승인을 얻어 8월17일 해군 함정의 지원을 받아 통영항쪽을 포격하여 정면 상륙을 하는것처럼 기만하면서 본대는 통영 동북부 장평리에 기습적으로 상륙하였다. 상륙과 동시 삼봉산을 점령한 김성은 부대는 8월 18일 새벽 총공격을 실시하여 전술적 요충지인 원문고개와 망일봉을 점령하여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 증원병력 차단을 한뒤 이어서 해군 함포 사격과 공군 항공기의 지원을 받아 8월 19일 새벽 어황산을 점령, 해군본부로부터 탄약과 1개 중대의 증원군을 지원받은뒤 총공격을 감행, 오전 10시에 통영 시가지를 완전 탈환하게 된다.

 

 


통영 시가지가 국군에 의해 탈환되자 북한군 패잔병 200여명은 어둠을 틈타 어선을 탈취, 고성방면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한 달에 걸쳐 북한군은 아홉차례에 걸쳐 원문고개 방면으로 정면공격을 시도하였지만 번번히 격퇴당했으며 이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완전히 패주하게 된다.


이 작전에서 대한민국 해병대는 적 사살 469명,포로 83명이라는 전과를 올렸으며, 전사자는 불과 19명에 불과한 거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 단독으로 시행한 상륙작전이자 공격작전으로 낙동강 방어선의 측후방의 위협 제거 및 해군 기지가 있는 진해항과 인근 마산항의 제해권 장악 및 해군의 기동로를 확보하는 의의를 가지며 이후 인천상륙작전까지 안정된 해상 기동로를 확보하게 된다.


특히 통영상륙작전은  고종석 해병을 기억해야 한다. 8월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된 그는 1949년 개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해병2기생으로 군에 입대한 후 김성은 부대에 배치, 지리산과 제주도 일대 공비토벌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경남 진동리 지역에서 북한군 제6사단 정찰대대를 기습 공격하고, 적의 침공을 저지해 진동리-마산 간 보급로를 끊고, 낙동강 최후 방어선을 사수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50년 8월 16일 낙동강 방어선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북한군이 전략요충지인 마산과 진해를 해상에서 봉쇄하기 위해 통영에 침입하자 손원일 해군 중장은 해병대에 출동명령을 하달했다.


이에 김성은 부대는 적진에 대한 상륙작전을 감행했고 고종석 일등병조는 김성은 부대 예하 제1중대 1소대 분대자으로 통영 장평리 해안에서 작전에 임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김성은 부대는  상륙 작전 이틀만에 통영을 탈환해 한국군 최초의 단독 상륙 작전을 성공 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북한군은 통영지역 재진입을 위해 수차례 역습을 감행하며 집요하게 공격해 왔다. 유일한 공격로인 원문고개를 방어하던 국군을 향해 북한군은 정면으로 공격해 들어와 백병전을 펼쳤다.


부상도 개의치 않고 전투에 나서 적 3명을 무찌르고 도망치는 적 6명을 사살한 고종석 분대장은 적의 방망이 수류탄이 호에 떨어지자 '엎드려'라는 외침과  함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몸을 던졌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분대원들의 생명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한 것이다.

고종석 분대장의 희새을 본 분대원들은 일제히 육박전을 감행해 적을 물리치고 마침내 진지를 사수했다.


정부는 해병대의 투혼을 발휘해 살신성인과 희생정신의 귀감이 된 고인의 공훈을 기려 대통령 특명에 의해 2계급 특진인 일등병조로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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