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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료마와 도바쿠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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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료마와 도바쿠 운동

 

 

 

 

오늘날 일본인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너도나도 사카모토 료마라는 답을 내놓는다. 혁명가이자 타고난 협상력과 돌파력을 갖춘 정치인, 정열적인 평화주의자와 자유인의 면모를 두루 갖춘 그의 매력이 일본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궁벽한 시골인 도사번에서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에도 막부 정권이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개화의 물결이 요동치던 때, 막부에 도전하는 양대 세력으로 정권 쟁탈전을 벌이던 조슈번(오늘날 야마구치현)과 사쓰마번(오늘날의 가고시마현)을 중재하여 1866년 막부에 대항하는 동맹을 성사시킨 이가 바로 사카모토 료마다. 이 동맹을 발판으로 도바쿠(막부를 토벌한다)운동은 막부를 무너뜨릴 결정적 전기를 마련했다. 

 

1867년에는 막부가 가지고 있던 통치권을 천황에게 이양해 천황을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삼고, 번을 기초로 한 의회 제도를 도입하자는 이른바 '대정봉환' 구상을 추진했다. 그러나 막부와 존왕파 사이를 바쁘게 오가던 그는 어느 날 자객의 칼에 맞아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료마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하여 그가 죽은 뒤 일본은 왕정이 복고되고 메이지 유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카모토 료마가 메이지 유신으로 가는 물꼬를 튼 것은 사실이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그의 공적이 화려한 것은 아니다. 

군대를 이끌고 뛰어난 지략으로 적군을 쳐부순 적도 없고, 사이고 다카모리나 이토 히로부미처럼 일본 열도를 호령했던 것도 아니다.

 

대업을 이루기에는 그의 생은 너무도 짧았다. 생전에도 근대화 이후에도 그는 '개화 시대의 열혈 청년'중 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가 현대 일본인의 스타로 떠오른 것은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가 1965년 펴낸 베스트셀러(료마가 간다)덕분이다. 

 

이 소설 이후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의 '국민 영웅'으로 급부상했고, 최근에도 일본의 공영방송 NHK에서 드라마(료마전)을 방영하면서 또 한 번 신드롬을 일으켰다. 

 

 

약관의 하급무사가 역경을 딛고 거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파란만장한 일대기, 아무런 기반도 없고 세력도 없지만 일본 곳곳을 정열적으로 누비며 거물들의 마음을 움직여 분쟁을 해결하는 성공담은 왜소해진 분쟁을 해결하는 성공담은 왜소해진 현대인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사리사욕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서민적 풍모를 잃지 않는 모습은 일본인들에게 이상적인 지도자 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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