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 이라크 유조선 전쟁
도시 전쟁 외에 이란-이라크 전쟁의 특징을 하나 더 꼽는다면 후세인이 1984년부터 시작한 '유조선 전쟁'을 들수 있다.
그이전까지 이라크는 주로 이란의 민간 선박을 공격했으나, 미사일과 전투기를 이용한 유조선 공격은 전혀 다른 것을 겨냥했다.
바로 국제 사회를 목표로 삼은 것이다. 후세인은 벌써 4년째 끌고 있는 지상전이 막다른 상황에 이르자, 미국 같은 서구 열강이 개입하여 묵은 체증을 해결해 주기를 바랐다. 또한, 유조선을 공격하면 이란이 뭔가 성급한 대응을 할 것이고, 그러면 미국이 어쩔 수 없이 개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1984년 2월부터 하르그 섬의 이란 유정에 드나드는 모든 국가의 유조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라크는 한 달 동안 평균 4회 정도 이런 일을 벌였다. 하지만 이란 정부는 이라크의 속셈을 알아채고 이라크의 동맹국인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선박에 대한 보복성 공격을 최대한 자제했다.
그렇지만 이라크가 계속해서 유조선을 공격한 탓에 이란의 석유 수출량이 50퍼센트로 뚝 떨어져 국가 경제에 피해가 막심했고, 전 세계의 석유 공급량도 급락했다. 드디어 국제 연합이 개입했고, 양측은 유조선 공격을 중단하기로 동의 했다. 하지만 이라크는 금세 그 협정을 무시하고 이란에 드나드는 선박을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이란 역시 쿠웨이트 유조선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쿠웨이트 정부는 미국에 보호를 요청했다. 미국은 쿠웨이트 유조선 11척에 '선적 등록국 국기'인 미국 국기를 달고 페르시아 만까지 호위했다.
소련 역시 쿠웨이트 선박을 보호하고 나섰으며, 그 결과 1987년 말에 두 강대국 해군과 다른 소국 해군들이 펼치는 호위 작전으로 페르시아 만이 붐비게 되었다. 후세인은 바라던 바를 이루었다. 이란 해군의 발이 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