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건국자 다비드 벤구리온
이스라엘이 새로운 나라로 탄생하는 데는 뛰어난 지도자들의 공헌이 있었다. 그중에 첫손에 꼽아야하는 인물이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다. 벤구리온은 1886년 폴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시온 운동을 깊이 신봉하는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벤구리온 역시 이 믿음을 따랐으며, 폴란드에서 벌어진 유대 인 학살을 보면서 그 믿음이 더욱 강해졌다.
벤구리온은 덩치는 작았지만, 열성적이고 카리스마 있었으며, 다소 권위적이고 설교하기를 좋아했다. 1906년, 많은 시온주의자가 그랬듯이 벤구리온도 당시 오스만 제국 일부였던 팔레스타인에 이민했다. 그는 농장 노동자이자 사회주의자가 되었으나, 평생의 꿈은 팔레스타인에 유대 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1915년에 그는 정치 활동을 하다가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되었다. 미국으로 간 벤구리온은 뉴욕의 시온주의자 집단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권모술수가 판치고 계속 이랫다 저랬다 하는 사회주의 집단에 애정을 잃었다. 그 대신 민주주의 쪽을 좀 더 손호하게 되었다.
벤구리온은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이 통치하는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유대 인 사회 이슈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다. 1930년대에 나치 독일이 유대 인에게 가한 폭력이 팔레스타인의 유대 인 사회에 알려지자, 벤구리온은 나라 세우는 일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벤구리온은 기막힌 전략을 세웠다. 당시 영국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들도 유대 인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을 데려오는 지하 구출 체제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영국 당국은 그곳에 도착한 유대 인을 즉가 수용소에 가뒀다.
이러한 시온주의자들의 고난은 바깥세상에 알려져, 전 세계의 동정심을 유발했다.
동시에 , 벤구리온은 수천 명의 젊은 유대 인에게 영국 군대에 입대하여 나치와 싸우고 소중한 전투 경험을 얻을 것을 설파했다. 그는 아랍 인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유대 국가를 세우려면 수많은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948년까지 벤구리온은 때가 되면 언제든 나가 싸울 수 있는 비밀스러운 군대 '하가나'를 창설했다.
벤구리온의 계획은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주효했다. 그는 1948년에 총리가 되어 1950년대 중반 2년을 제외하고 1963년까지,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를 훌륭하게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