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사나이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는 살아남지 말았어야 했다. 두 번이나 부상을 당한 제 1차 세계 대전 때 참호에서 죽든,1939~1945년 사이에 17차례나 시도된 암살로 총에 맞아 죽든 폭탄에 맞아 죽든, 어떤 식으로든 죽었어야 했다. 신의 가호가 함께한 것인지, 운명인지, 우주의 신비로운 기운 때문인지는 알수 없으나, 어쨌든 히틀러는 대단히 운이 좋은 사나이였다. 반대로 그와 마주친 사람들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1889년 오스트리아에서 세관 검사원 알로이스 시클그루버의 아들로 태어났다. 히틀러에게 유대계 조부모가 있었다는 소문은 연합군 선전가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알로이스는 자신의 성이 촌스럽다고 느껴 히틀러로 바꾸었다.
어린 시절 아돌프는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며 자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는 아돌프가 열세 살 때 죽었다. 히틀러는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빈으로 갔다. 그곳에서 자신에 관해 고민하고, 미술학교에 다니고, 종종 길거리에서 생활하기도 하면서 지나가는 부유한 유대 인 가족을 부러워했다. 그러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인생의 목적을 발견했다.
애국적인 열정에 휩싸여 서부 전선에 자원입대해 상병까지 올랐고, 두 번 부상을 당해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독일은 수치스러운 패배를 맛보았고, 베르사유조약으로 어마머마한 배상금을 물게 되었다. 히틀러는 절망하고 분개해 '자유 군단'이라는 의용병 단체에 가담했다. 준군사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자유 군단은 독일에서 소위 '11월 범죄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즉 1918년 11월에 휴전을 부추긴 볼셰비키와 독일 정치인 , 장군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히틀러는 거리의 투사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스'를 이끌게 되었다. 이 이름은 독일어 '나치오날'의 앞부분을 딴 것이다. 에른스트 룀이 이끄는 돌격대를 데리고 있던 히틀러는 독일 정치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었고, 결국1933년에 권력을 잡았다.
히틀러는 순수 인종 정책을 폈는데, 이에 따라 순수한 아리아 인 혈통이 아닌 사람을 모두 제거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리아 인은 대가족을 이뤄야 했고, 그러기 위해 독일인은 주변국으로 영토를 늘릴 필요가 있었다. 히틀러는 1930년대 중반에 독일을 재무장했다.
그는 체코스로바키아를 상대로 한 작은 전쟁부터 폴란드, 영국, 프랑스를 상대로 한 조금 더 큰 전쟁, 이어서 소련을 상대로 한 더욱 큰 전쟁, 끝으로 미국을 상대로 한 대규모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전쟁을 계획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처음에는 모든 것이 히틀러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하지만 러시아를 침공하겠다는 그의 결정은 과거 나폴레옹의 선례를 답습했고, 스탈린그라드의 패배 이후 독일은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히틀러는 독일과 나치스 점령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유대인을 제거했다.
그가 유대 인을 학살한 방법은 인류가 지금껏 본 적 없었던, 의도적이고 과학적인 것이었다.
히틀러는 마지막으로 V-1과 V-2 로켓으로 런던을 파괴 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폐허가 된 수도 베를린에 은신해 있던 히틀러는 러시아군이 그의 사령부에서 겨우 두 블록 떨어진 곳까지 다가왔음을 알게 되었다. 1945년 4월 30일이었다. 히틀러의 행운은 마침내 바닥이 났다.
그는 청산가리 캡슐을 삼키는 동시에 머리에 총알을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