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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관의 치 당태종 이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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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관의 치 당태종 이세민

 

이세민은 한족과 선비족의 혼혈인 귀족 가문의 자손으로, 수나라 태원유수인 이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연의 이모가 바로 수문제 양견의 아내인 독고황후이므로 이연은 수양제 양광의 이종사촌이 되는 셈이다. 

즉, 수나라 황실과 당나라 황실은 한핏줄이라고 할 수 있다. 

 

 

수나라가 일대 혼란에 빠져들면서 이연이 수의 뒤를 이어 천하를 차지하게 되었다. 태원의 유수였던 그는 채 20세도 되지 않았던 둘째 아들 이세민의 강력한 권유로 봉기하여 618년에 수의 마지막 왕이었던 양유에게 선양을 받아 새로운 왕조인 당을 건국, 당고조로 등극했다. 

 

하지만 새로운 나라가 건국되었다고 해서 대륙 전체가 안정된 것은 아니었다. 각 지방의 유력한 무장들이 저마다 독립하여 천하를 장악하려고 서로 들고 일어나 싸웠다. 남부 지방은 이전의 남조를 계승한다는 취지하에 독립했고, 돌궐족은 중국으로 쳐들어와 변경에 괴뢰 왕조를 세우고 본격적인 대규모 침공을 노리고 있었다. 

 

고조는 장남인 건성을 황태자로 책봉하고 차남인 이세민을 진왕에, 셋째 아들인 원길을 제왕으로 봉한 후 이세민에게 반란 세력을 처단하라는 임무를 내렸다. 

 

618년에서 624년에 이르기까지 이세민은 돌궐족을 만리장성 밖으로 몰아내고 남부 지방을 정복했으며 설거, 왕세충 등 다른 모든 반란 세력을 물리쳤다. 그는 뛰어난 전술과 함께 수많은 인재들을 수중에 끌어모아 남은 잔당들을 일거에 물리쳐나갔다. 지는 법이 없었던 그에게 고조는 천책상장 즉  '하늘의 지략을 지닌 장군'이라는 별호를 내렸다. 

 

 

당나라에 대항하여 싸웠던 많은 반란 지도자들은 처형되거난 일찍감치 항복하여 당나라의 작위를 받았다. 백성들은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세민에게 차츰 열광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생의 이름이 높아지자 그만 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던 황태자 이건성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이세민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전하여 아버지와 동생사이을 갈라놓았고, 마침내 막내동생 원길을 끌어들여 이세민 제거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음모를 먼저 간파한 이세민은 이를 역이용해 626년 7월 2일 부황 이연에게  형제들이 자기를 죽이려 모함한다고 고했다. 이연은 그들을 궁성으로 불렀고, 그들이 현무문으로 들어온 순간 매복한 군사들이 화살을 쏘아 그자리에서 살해했다. 이를 '현무문의 변'이라고 하며,이 일이 벌어지고 사흘 후 고조는 이세민을 황태자로 앉혔다. 그리고 3개월 후 황위를 양위했다. 

 

 

이세민은 당의 2대 황제인 당태종에 등극, 연호를 정관으로 하였다. 황위에 오른 태종은 방현령,두여회,위징,왕규와 같은 인재들을 등요하여 국정을 잘 보살폈으며 문화를 꽃피워나가 '정관의 치'로 칭송되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태종은 수대에 개시한 과거를 정비하여 천하의 인재를 등용하였고 3성 6부를 중심으로 관제를 완성하였다. 전국을 10도로 나누어 관리하였고 정관율령격식을 공표하여 율령격식을 완성하였으며 균전제,부병제, 조용조세제,등을 시행했다. 

 

이러한 여러가지 법률로 국가는 풍족해지고 민생도 안정되었다. 태종은 인재를 등용할 때 출신을 가리지 않았다. 설령 적의 아래에 있던 사람이라도 그 능력이 뛰어나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신하들이 자신을 비난해도 역정을 내지 않고 충언을 받아들여 국가와 백성들을 위한 최선의 방책을 행했다. 

 

이런 현명한 태도 덕분에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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