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산 직전의 회사를 살려낸 리 아이어코카
미국의 재건왕 '산업계의 영웅'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경영자 리 아이어코카 . 그는 1924년 부유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알렌 타운에서 태어났다. 미국 명문대학의 하나인 리 하이 대학교에서 기계공학과 관리공학을 배웠고,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46년에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에 입사했고, 판매기획을 성공시켜 두각을 나타내면서 1960년 포드 부문의 총지배인 겸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1960년대 들어 호경기를 배경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른바 '베이비부머'라고 불리는 세대용 중형차로 개발된 스포츠 카, '머스탱'의 개발 책임자가 된다.
1964년 뉴욕만국박람회의 첫날에 발표된 초대 머스탱은 미국 자동차 역사에 남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아이어코카의 이름은 머스탱과 함께 전 세계의 알려지게 된다.
1970년에 포드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사장 재임 중에는 오일쇼크와 일본제 소형차와의 경쟁격화로 침체된 국내외의 판매를 비대화한 머스탱의 소형화와 국내 판매망의 강화, 전륜구동 소형차인 '축제'의 도입을 실시하여 극복했다.
순조로운 경영 성적을 배경으로 아이어코카는 포드의 회장 헨리 포드 2세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어코카가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하여 명성을 높여가는 한편 공사를 혼동한 독단적인 경영기법을 드러내자, 경영방침을 둘러싸고 헨리 포드 2세와 대립하게 된다.
급기야 1978 10월, 포드가 사상 최고의 매출을 2년 연속으로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헨리 포드 2세는 "이유는 없다, 나는 너를 싫어한다"며 아이어코카 사장을 해고했다.
어느 날 갑자기 황당무계하게 포드의 사장직에서 해고된 아이어코카는 분노와 치욕에 온모믈 떨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고 자신도 죽고만 싶었다. 그러나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당시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져 있던 라이벌 회사 크라이슬러의 사장으로 취임한다. 이등해인 1979년, 회장이 된 아이어코카는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정하고 사내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새로운 경영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기사회생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금조달을 위해 미국 의회로 달려가서 정부가 채무보증을 서달라고 의원들을 설득하여 15억 달러라는 거금을 융자받는 데 성공한다.
그것을 밑천으로 소형차 개발로 대박을 터트렸고, 19년 상환의 부채를 3년 만에 다 갚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아이어코카는 만성적자로 파산 직전까지 몰린 크라이슬러를 살렸고, 60여만명의 일자를 지켜냈다. 이 공로로 아이어코카는 '미국 산업계의 영웅'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