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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에서 대통령이 된 코라손 아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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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에서 대통령이 된 코라손 아키노

 

 

'피플 파워 혁명'의 상징이며, 필리핀 최초의 여성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 그녀는 필리핀 최대의 지주 코주앙코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뉴욕의 마운트세인트빈센트 대학교에서 프랑스어와 수학을 전공했고, 귀국 후 마닐라의 파이스트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고향의 명문가 출신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와 1955년 결혼하여,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충실했다. 

 

1972년 상원위원이던 남편이 대통령 마르코스에 의하여 투옥되자 8년간 옥바라지를 했고, 1980년 신병 치료를 조건으로 남편의 미국행이 허가되어 3년 간 함께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1983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하여 마닐라에 도착한 남편이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되자 남편의 장례식을 마친 그녀는 "베니그노를 잃은 슬픔은 나 자신만의 슬픔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며 독재정권과 맞서 싸울것을 선언했다. 필린 민중은 코라손의 애칭인 '코리'를 외치며 그녀를 지지했다. 

 

 

그녀는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필리핀 '민주주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대통령 후보로 추대된다. 코라손은 남편의 무덤을 찾아가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이루겠습니다."하고 결의를 다짐한뒤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저는 대통령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마르코스 정권에 희생된 사람들을 대신해서 싸울 뿐입니다."

"우리 조국과 미래를 빼앗긴 아이들에게 애도를 표합시다. 이제 이 억압의 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제가 독재자 마르크스를 몰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청중을 앞둔 가녀린 여성 코라손 아키노의 연설은 너무 서툴렀다. 그것이 사람들의 '도와주지 않으면,,'하는 동정심을 자아냈다. 그녀는 긴장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마르코스는 나를 정치 경험이 없는 여자라고 비난합니다. 네, 저는 경험이 없는 사람이 맞습니다. 부정과 부패와 살인과 독재의 경험이 없는 사람입니다. "

 

민중들은 열광하고 환호한다. 연설의 솜씨가 문제가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선봉 '코라손'이라는 반 독재를 위한 미주투사이기 때문이다. 

 

 

1986년 2월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마르코스도 코라손도 승리를 선언한다. 이때 마르코스 진영의 득표 부정조작이 판명되어 국군개혁파와 100만 시민이 코라손을 지지하고 거리를 가득 메우면서 마르코스는 망명을 하고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남편을 잃고 살림만 하던 여성이 독재정권을 무너트리고 대통령이 되어, 필리핀에 꽃피운 민주주의의 정신은 코라손 아키노와 함께 필리핀 국민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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