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군에 맞서다 숨진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억압받아온 노동자들의 희망의 별' , '칠레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부를 출범 시킨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Salvador Allende) .
그는 1980년 칠레 중부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났다. 아옌데의 집안은 칠레 정치 명문가였고, 아예데 자신도 기득권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다.
그는 1926년 군대를 마치고 칠레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의학도의 길을 걷던 중 칠레 민중들의 참담한 현실을 목격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학창시절에 이미 학생회장에 당선되는 등 지도자적 자질을 보였다.
그의 정치저 편력을 간단히 살펴보면 1932년 칠레사회당 창당에 참여하였고,1937년 사회당 후보로 하원위원에 당선되었다. 1938년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었고, 의장과 부의장을 지냈다. 그리고 1952년부터 1964년까지 연이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1970년 인민연합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마침내 당선되었고 1970년 11월 3일, 칠레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당시 칠레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다. 미국의 30대 다국적 기업 중 24개가 칠레에 진출해 있었고, 은행을 제외한 18대 칠레 기업이 미국의 자회사였다.
아예데는 취임 이후 이런 칠레의 왜곡된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 민중들을 잘살게 하기 위한 사회주의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우선 다국적 기업들이 소유한 탄광, 구리광산과 대형은행을 국유화했고, 영양 부족으로 유아사망률이 심했던 칠레의 상황을 고려해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우유를 배급하는 정책도 추진했다.
다른 한편으로 과도한 대토지 소유를 규제하고자 사유지의 4분의 1 내지 5분의 1을 국유화하는 토지 개혁도 추진했다.
이런 사회주의 개혁의 성과로 아예데 집권 초기에는 경제가 살아났지만, 집권 2년차가 되자 칠레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고 각종 생필품에 대한 가격 통제가 도리어 물가를 상승시키는 사태를 빚어냈다. 더욱 큰 타격은 미국이 아옌데 정권을 못마땅하게 여겨 칠레 경제를 고사시키는 작전을 썼으며, 미국 CIA가 피노체트에게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조종했다는 것이다.
1973년 9월 11일, 군부 쿠데타가 발발했고 육,해,공,군과 경찰까지 장악한 쿠데타군은 대통령궁을 완전 포위했다. 그리고 쿠데타의 주모자 피노체트가 아옌데에게 '망명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낸다. 그러나 아옌데는 망명을 거부하고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장렬하게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