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짓밟았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
고대의 위대한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인 한니발 . 그는 기원전 247년, 카르타고의 장군이었던 하밀카르 바르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제1차 포에니전쟁에서 카르타고가 로마에게 패배하자 하밀카르 바르카는 가족과 자신의 나라인 카르타고의 미래를 위해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정복지를 넓히고 은광을 개발하며 카르타고의 손상된 국력 회복을 뒷받침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의하면 그가 아홉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네가 자라면 반드시 로마를 멸망시켜야 한다. 신과 아버지 앞에 맹세하거라"라고 다짐을 했다고 한다.
기원전 229년, 아버지가 암살을 당했는데 배후에는 로마가 있었다. 한니발에게 로마는 아버지가 멸망시키고 싶어 했던 나라요,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나라였다.
기원전 221년에 26세의 나이로 카르타고군 총지휘관이 된 그는 이베리아 북부를 공략했고 로마의 속령이었던 사군툼을 점령했다. 이를 계기로 기원전 218년,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된다.
한니발은 이전의 전쟁에서 '로마는 육군의 나라이고 카르타고는 해군의 나라다'라는 발상을 뒤집어 바다에서도 육지처럼 싸우는 방법을 개발해 이번에는 바다가 아니라 육로로 로마를 침고, 육지전에서 로마를 패배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로마가 서지중해에서만 카르타고 함대가 쳐들어올것이라고 감시하는 동안 한니발은 4만의 병력으로 피레네 산맥을 넘고 갈리아를 통과, 다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로 침입했다. 그러나 그때 군사는 보병 2만, 기병 6,000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뛰쳐나온 한니발 군에게 로마인들은 혼비백산했다. 그래도 총 75만의 병력을 가진 로마군은 원정 과정에서 절반가량 준 한니발 군을 간단히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니발은 기병대와 코끼리부대를 써서 로마의 중장보병을 뒤흔들어놓고, 이를 다시 보병대로 밀어붙이는 전법으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한니발은 후세에 '전략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전투의 여러 요소를 적절히 배합하여 통상적인 전투력보다 몇배나 되는 힘을 끌어내는 천재였다.
그러나 점차 전세를 회복하기 시작한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가 에스파냐를 정복하고 카르타고로 육박했다. 한니발은 고국에 소환되었으며 기원전 202년 자마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대패함으로써 결국 2차 포에니 전쟁도 카르타고의 패배로 끝났다.
한니발은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정치인들을 피해 망명했다. 티레. 시리아.비티니아 등을 떠돌며 로마에 복수할 방법을 모색했으나 헛수고 였다. 기원전 183년, 비티니아 왕이 로마군에게 그를 넘겨주기로 결정 했음을 듣고 그는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아,카르타고여! 나를 용서해다오!"그는 죽어가며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그가 죽고 난 37년 뒤, 카르타고는 로마에 의해 멸망했다. 비록 비운의 종말을 맞았지만 역사가들은 카이사르, 알렉산더,한니발을 세계 정복자 반열에 올려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