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계 출신, 벤저민 디즈레일리 영국 수상에 오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황금기, 보수당의 리더로 재무상과 총리를 여러 차례 역임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건설한 주역 벤저민 디즈레일리,
그는 1804년 런던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변호사 사무소에 견습으로 들어갔으나 적응을 못하고 어릴 때부터 흥미를 가졌던 문학으로 전향하여 1826년 처녀작 (비비앤 그레이)를 발표하여 문명을 얻었다. 1831년(젊은 군주)를 발료하여 성공하고 1832년 (콘타리니 플레밍)과 (알로이) 등을 연이어 발표했다.
소설가로 유명해지자 1832년 급진당 후보자로 보궐선거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하고,이어서 토리당원으로서 입후보, 또 낙선했다. 자그마치 여섯 번이나 낙선한 후 1837년 토리당원으로 하원의원에 피선되어 비로소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 후 뛰어난 필력과 웅변에 힘입어(코닝스비),(시빌),(탱크렛) 등 정치소설로 토리 데모크라시를 주장하는 동시에, 보수당 내에 청년영국당을 결성하여 R. 필의 곡물법 철폐를 격렬히 비판하는 등 보호 무역주의의 지도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1852년부터 1868년 사이에 재무장관을 세번이나 지냈고 1868년에 총리가 된데 이어 영국이 1870년대에 '세계 공장'의 지위로 부상하고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자 그는 재빨리 영국제국의 통합을 보수당의 가치로 내걸어 1874년 총선에서 압승하였고, 다시 총리 자리에 앉게 되었다.
1875년 수에즈 운하의 주식 17만 주를 400만 파운드에 매수하여 동방항로를 확보하고, 1877년 법률을 통과시켜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여황제'의 칭호도 갖게 했다.
1878년 베를린 회의에 전권으로서 출석하여 러시아의 야망을 누르고 사이프러스 섬을 획득하는 등 제국주의적 대외 진출을 추진했고, 내정으로는 공중위생과 노동조건의 개선에 힘써서 1876년 백작에 봉해졌다. 그는 글래드스턴과 함께 빅토리아시대의 번영기를 지도하여 전형적인 2대 정당제에 의한 의회정치를 실현한 정치 거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정치인으로서는 물론 인간적으로도 디즈 레일리는 남다른 인물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영국은 유대계에게는 극심한 인종차별이 심했다. 그런 시대에 검은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유대계 디즈레일리가 상류 사회로 진입할 수 없는 차별의 벽을 무너뜨리고 자수성가하여 수상까지 되고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백작 작위를 수여 받았다는 것은 오늘날 흑인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