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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꿈 오스만의 내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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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꿈 오스만의 내전의 시작

 

 

 

술탄 바예지드 1세(1354~1403)가 앙고라 (오늘날의 앙카라) 전투에서 패하여 사로잡힌 뒤 사망하자 신생 오스만 제국은 흔들렸다. 바예지드 1세의 아들 8명 중 4명이 각각 개별 근거지를 확보하고서 술탄직을 차지하려고 투쟁했다.

메흐메드(메흐메드 1세, 1389?~1421)는 카라만을 장악했고, 쉴레이만(1377~1411)은 오스만 제국의 유럽 영토를 지배했으며, 이사(1405년 사망)와 무사(1413년 사망)는 아나톨리아의 영토를 차지했다. 

 

 

처음에는 쉴레이만이 최고 권력을 얻은 듯했다. 쉴레이만은 1405년 비잔티움 제국과 동맹을 맺고 이사를 물리쳐 교살했다. 그 다음에는 동생인 무사가 쉴레이만과 트라키아의 비잔티움 제국의 공동 황제 중에 한 명인 만누엘 2세 팔라이울로고스(1350~1425)를 격퇴하려고 시도했지만(1406), 동맹자였던 세르비아인과 불가리아인이 무사를 배반했고 쉴레이만의 군대가 오스만 제국의 수도인 에디르네를 점령했다. 

 

쉴레이만의 권세는 단명했다. 무사가 튀르크족과 블라크인을 이끌며 쉴레이만에 맞섰고, 예니체리(오스만 제국의 정예 친위 부대)를 설득하여 이탈하게 한 뒤 쉴레이만을 사로잡아 목 졸라 죽이라고 명령했다. 무사의 군대는 콘스탄티노플 오늘날의 이스탄불을 포위하려 했으나 함대를 잃고 패배했다. 

 

쉴레이만 1세

 

그래도 지배권을 잃지 않은 무사는 비잔티움 제국 황제가 티무르 왕조에 도움을 간청했다는 거짓 비난을 퍼부어 대규모 군대를 모았다. 무사는 1406년에 자신을 배신한 세르비아인을 응징했으며 테살로니키를 점령하고 그 통치자였던 쉴레이만의 아들의 눈을 멀게 했다. 그러나 메흐메드가 강력한 튀르크족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쉴레이만을 대신하여 복수했다. 

 

비잔티움제국과 동맹한 메흐메드는 다시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한 무사의 군대를 겨파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예니체리를 되찾았고 세 차례의 전투에서 결국 무사를 무찔러 교살을 명령했다. 이제 메흐메드 1세는 가족 누구의 반대도 받지 않았고 제국의 재통합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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