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란 해전(스카게라크 해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주요 전략은 강력한 해상 봉쇄로 독일에 맞서는 것이었다. 영국 함대는 북해를 정기적으로 순찰하여 독일 항구에서 어떤 배도 떠날 수 없도록 막으려 했다. 라인하르트 셰어(1863~1928)제독이 지휘하는 독일의 대양함대는 바다로 나가 윌란 반도와 노르웨이 사이의 북해 출구인 스카게라크 해협으로 진입하여 영국 해군의 힘을 시험했다.
1916년 5월31일에서 6월 1일에 윌란 반도 해안으로부터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에서 프란츠 폰히퍼(1863~1932) 제독이 지휘하는 독일의 정찰 함대가 데이비드 리처드 비티(1871~1936)제독과 휴 에번스토머스(1862~1928)제독이 지휘하는 영국 해군 함대와 맞닥뜨렸다.
이영국군은 독일군의 정확한 포격에 큰 손실을 입고 존 러시워스 젤리코(1859~1935)제독이 지휘하는 대함대에 합류했고, 히퍼의 정찰 함대는 대양함대에 합류했다. 젤리코의 대함대와 셰어의 대양함대가 맞붙었다. 독일 함대를 항구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포위하여 격파한다는 영국 해군의 작전은 그날 거의 성공할 뻔했다.
그러나 독일군은 어둠과 안개를 이용해 능숙한 전술을 펼친 뒤 탈출에 성공했고 전투에 참전한 군함 총 99척 중 겨우 11척을 잃었다. 영국은 더 많은 군함(151척 중 14척)과 인명(적군의 두 배 이상)을 잃었지만 북해에서 전력의 우위를 유지했다.
독일 해군은 사기가 꺾였으며 이후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전투를 회피했다. 대구경 함포를 주요한 무기로서 탑재한 중장갑 군함인 드레드노트 전함의 건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한 가지 원인이었는데 윌란 해전은 드레드노트 전함들을 포함시킨 함대가 대결한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