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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의 대한 부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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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가 10.26을 일으킨 것은 결국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권력투쟁속에서 벌인것 이라는 해석이 있다. 2004년 국무총리 산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도 김재규의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김재규는 자기보다 새파랗게 젊고 군대 계급도 낮은 차지철에게 면박을 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수모를 당했고 이에 대해서 격분했다는 증언이 주변 인물들로부터 흘러나온 바 있다. 이런점들로 비추어 보았을 때 김재규가 민주화 운운하는 것도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건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 글가 차지철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비해 보았을때 상대적으로 온건성향으로 비쳐질 따름일뿐 그역시도 독재정권에 부역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유신정권의 크게 3개의 권력 축인 대통령 경호실, 중앙정보부 ,국군보안사령부를 대표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차지철, 김재규,전두환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서로간에 치열하게 견제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구도 속에서 파장이 일어난 것이 10.26이라는 것 드라마 제5공화국,제4공화국등 공화국 시리즈 등에서도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묘사되고 있다. 특히 경호실과 중앙정보부의 대립과 반목은 그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 시절에도 이들은 사이가 몹시 좋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 무렵에 차지철계로 분류되고 있던 김치열 법무부장관이 차기 중앙정보부장으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박정희가 야당문제와 부마항쟁 등에 대한 미흡한 대처에 대해서 김재규를 책망하는 일이 잦아지자 김재규 본인도 파워게임에서 밀리 것이라는 직감을 하게될 공산이 컷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쿠데타 이후 김재규는 박정희를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자장관들을 모아놓고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압박했는데, 이를 정권권탈취시도로 보는 경우도 많다. 김재규 본인은 권력장악을 의도하지 않았고, 유신의 잔재를 청산한뒤 물러나 박정희 묘에 시묘살이나 할 생각이라고 했었지만 이런거야 자기만 아는 일이니까 다른 한편으로 그가 쿠데타 당시 보여주었던 일련의 치밀하지 못했던 행동 역시도 결코 비비판을 피할 수없다. 당시 김재규는 차지철과 박정희를 암살한후, 자신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군본부로 이동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수 시간만에 체포되었다. 이는 김재규가 단순히 차지철, 혹은 박정희를 암살한다는 계획만 세웠을뿐 , 그후 신정부 수립이나 정국 주도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계획이나 마찬가지였음을 보여준다. 구가원수 암살이라는 그단적인 방식을 통해서 급진적 권력 교체를 시도한다면, 이를 뒷받침할 만한 치밀한 계획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10.26이 역사에 긍정적 영향을 주려고 한 계획이었다면, 단순히 박정희를 암살하는 것으로 끝낼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박정희를 암살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은폐하고 이와 관계된 사람들과 철저하게 입을을 맞추어야 했다. 그리고 난 이후 정권교체 및 민주화까지 질서있고 안정적으로 진행될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진정으로 쿠데타가 성공 할수 있는것이 었다. 이런 중대한 일을 저지르는 입장에서 그는 너무나도 무능력한 모습을 보였다. 다 이렇다 보니 10.26 으로 박정희의 장기 철권 통치는 끝낫을지 몰라도 , 이를 대체할 새로운 권력질서가 안정적 민주적으로 등장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모두가 다 아는 전두환의 신군부 등장과 12.12 ,5.18 그리고 8년동안의 또 다른 군부 독재 였다. 만약 김재규가 좀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동조자를 늘리는 동시에 신정부 수립에서 정권 이양까지의 과정을 안정적으로, 질서 있게 진행시킬수 있었다면, 신군부의 폭주를 막는 것이 결코 불가능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간단하게 거사 직후 육군본부로 가지 않고 중앙정보부로 갔으면 신군부의 폭주를 간단히 막을수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김재규는 10.26 사태 직후 유신의 잔재를 5개월 내로 설거지하겠다는 생각으로 비상꼐엄령을 확대를 구상했는데 민주공화당은 이러한 구상안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낮다. 10.26직후 김종필이 민주공화당의 총재로 추대되었는데, 김종필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시절 청구동 가택수색과 협박까지 당한터라 김재규에게 호의적이기도 어려웠다. 거기다.10.26이후 김종필은 김영삼,김대중과 함께 개헌과 민주회복 이행에 공감하고 협조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공화당 역시도 김재규의 구상에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재규는 10.26이후 전국 비상계엄령 확대 조치를 취하고, 군 지휘관들을 중신으로 혁명위원회를 구성해서 자신이 위원장을 맡고 육군참모총장이 부위원장을 맡은 뒤 유신의 잔재를 제거하겠다는 방안안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엣에선서는 김재규가 계엄군을 장악하여 무력으로 사태를 제압하고 ,입법,사법,행정 권력을 장악한 이후 대통령 출마까지 계획했다고 판결하였는데. 김재규 본인은 대통령 출마 의사나 사리사욕은 없다고 부인 하였다. 그러나 김영삼이나 김대중 등 야당이 과연 김재규의 계획에 동의하거나 협조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계획대로 이루어지기는 거의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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