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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리다테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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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리다테스 전쟁

 

 

 

 

제 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기원전 88~기원전 84)

 

미트리다테스 6세(기원전 132?~ 기원전 63) '대왕'은 어린 나이에 소아시아 중앙 지역인 폰토스(폰투스)의 왕이 됐고, 성인이 되자 주변 지역의 주민들을 자신의 제국으로 통합하는 일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소아시아에 주둔한 로마 군대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 88년 미트리다테스 6세는 소아시아의 거의 모든 도시를 점령했고 , 수많은 로마인을 학살 하라고 명령했다. 

 

미트리다테스

 

기원전 85년 미트리다테스 6세의 그리스인 협력자들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슐라(기원전138?~기원전78)가 지휘하는 로마 군대와 대결하여 패했고, 미트리다테스 6세는 가이우스 플라비우스 핌브리아(기원전84년 사망)가 이끄는 다른 로마 군대에 쫓겨 폰토스로 되돌아왔다. 

 

미트리다테스 6세는 정복한 지역을 대부분 포기해야 했으며 많은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제 2차 미트리다테스 전쟁(기원전 83~기원전 81)

 

로마의 야심 많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기원전83~기원전 82년 활동) 장군이 미트리다테스 6세의 영토인 크즐르르마크 강 지역을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 됐다. 무레나는 패배했다. 기원전 75년 미트리다테스 6세는 히스파니아에 있던 로마의 퀸투스 세르토리우스(기원전 123?~기원전 72)장군과 협력했고 그로써 다시 전쟁을 유발했다. 

 

제 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기원전 75~기원전 63)

 

세르토리우스가 살해되자 서쪽에서 로마를 위협하던 세력은 사라졌고, 로마는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기원전117?~기원전56?)장군을 파견하여 동쪽의 미트리다테스 6세를 상대하게 했다. 로마는 키지코스와 카비라(오늘날 터키의 시바스), 티그라노케르타(오늘날의 티 그라나케르트), 아르탁사타(오늘날 아르메니아의 아르타샤트)등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고 미트리다테스 6세를 폰토스에서 내몰았지만, 루쿨루스의 지친 군대는 폭동을 일으키겠다고 위협했고,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 

폼페이우스

 

폼페이우스(기원전 106~ 기원전 48)는 지휘권을 장악하고(기원전 67) 기원전 66년에 리코스(리쿠스)강 전투에서 미트리다테스 6세는 실수가 치욕스러워 노예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미트리다테스 6세의 사위이자 협력자였던 아르메니아 왕 티그라네스 2세(기원전140?~기원전55?)도 패한 뒤 포로가 됐다. 티그라네스 2세는 기원전 66년에 정복지 전부를 로마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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