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파나마 침공
1983년 12월에서 1989년 12월까지 독재자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 장군은 파나마 방위군의 수장으로서 사실상 파나마를 통치했다.
사회의 혼란이 가중되고 반대파가 탄압을 받자(노리에가는 1989년 5월에 실시한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무효로 했다.)미국이 외교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노리에가를 강하게 압박했다.
노리에가는 미국에서 마약 거래 혐의로 기소됐다. 미주기구 oas와 여러 국가가 미국과 파나마 사이의 불화를 해소해보려고 노력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1989년 10월 3일 노리에가를 제거하려는 군사 쿠데타가 실패한 뒤 파나마 정부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비산'전쟁'조치를 발포했다.
12월15일 의회는 노리에가를 '최고 지도자'로 선언했고,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12월 20일 오전 일찍 저항을 분쇄하고 노리에가를 체포한 뒤 안정적인 민주적 체제를 세울 의도로 '정당한 명분 작전(미국군의 파나마 침공 작전)'을 개시했다.
파나마 운하를 보호하기 위해 이미 주둔해 있는 미국군 1만 2,700명에 새로이 침공한 약 1만 5천 명이 합류했다. 수도 파나마시티는 파나마 방위군과 미국군의 교전 중에 크게 파괴됐다. 직무를 수행할 경찰력이 없는 상황에서 약탈이 만연했다.
바티칸 대사관에 피해 있던 노리에가는 결국 1990년 1월 3일에 항복했고, 마이애미로 끌려가 나중에 1992년 마약 밀매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고 투옥됐다.
노리에가가 무효화했던 1989년도 대통령 선거에서 틀림없이 승리를 거두었을 기예르모 다비드 엔다라 가리마니(1936-2009)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대통령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