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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의 전쟁 미겔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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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의 전쟁 미겔파 전쟁

 

 

동 미겔(1892~66)이 이끄는 포루투갈 절대왕정주의자들은 입법권을 지닌 새로운 코르트스(의회)의 구성을 반대했다. 동 미겔은 형인 브라질 황제 페드루 1세(포르투갈 왕 페드루4세 1798~1834)가 반포한 헌법제정 선언을 수용한뒤 포르투갈 여왕 마리아 2세(1819~53)가 미성년일 동안 섭정으로 통치했다. 동 미겔은 마리아 다 글로리아라고도 불렀던 마리아 2세와 대리인을 내세워 혼인한 상태였다. 

 

그러나 동 미겔은 페드루 1세에게 했던 맹세를 어기고 온건한 지사들과 군 장교들을 독재적인 인사들로 교체했으며, 코르트스를 복종적인 기구로 대체했다. 코르트스는 1828년 5월 미겔을 포르투갈 왕으로 선포했다. 페드루 1세의 어린 딸이었던 여오아 마리아 2세는 브라질에서 포르투갈로 오다가 행선지를 바꾸어 영국으로 피신했다. 

 

 

포르투 등지의 입헌주의자들은 페드루 1세와 마리아 2세를 지지했으나 1828년 6월 24일 코임브라 인근에서 '메겔파'에 완패했다. 동 미겔은 1828년 7월 11일 왕에 즉위했고, 미겔을 따르던 절대왕정주의자들은 잔혹한 보복 전쟁을 시작했다. 1829년 여왕 마리아 2세를 대표하는 섭정 통치가 수립된 대서양의 아소르스 제도를 제외하면 포르투갈 전체가 미겔파에게 넘어갔다. 

 

페드루 1세는 아들에게 브라질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 유럽으로 건너와 포르투갈을 정복하기 위해 군대와 자금을 모았다. 1831년 4월 페드루 1세는 아소르스 제도에 상륙했고 영국의 지원을 받아 원정대를 편성한 뒤 1832년 2월에 포르투로 출격했다. 페드루 1세는 포르투를 점령했으나, 부르몽 백작 루이오귀스트빅토르(1773-1846)프랑스 장군의 지원을 받아 미겔파가 1년간 도시를 포위했다. 

 

그러나 곧이어 1833년 7월 5일에 미겔파의 해군은 상비센트 곶 근해에서 찰스 제임스 네이피어가 지휘하는 '해방' 함대에 패했다. 

 

1833년 7월 24일에 입헌주의자들이 리스본을 장악했다. 에스파냐 왕위를 요구했던 절대 왕정주의자 돈 카를로스(1788-1855)가 동 미겔의 도움으로 코임브라 근처의 기지에 숨어 있자 에스파냐는 돈 카를로스를 체포하려고 포르투갈을 침공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과 프랑스, 에스파냐.포르투갈이 입헌주의를 보호하고 절대왕정 국가인 오스트리아와 러시아,프로이센의 신성 동맹에 대항하려고 사국 동맹을 결성했다. 

 

입헌주의자들은 에스파냐의 도움을 받아 비제우와 코임브라, 토마르를 점령했고, 1834년 5월 16일 아세이세이라 전투에서 미겔파를 무찔렀다. 동 미겔은 폭넓은 정치적 사면을 받는 조건으로 10일 뒤 이보라몬트에서 항복하고 포르투갈 왕위 주장을 포기했으며 독일에 은거했다. 페드루 1세는 1826년도 헌법을 다시 도입했으며, 여왕 마리아 2세가 성년이 됐다는 선언과 함께 포르투갈 여왕으로 복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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