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니비사우 내전이란
1998년 6월 기니비사우의 주앙 베르나르두 비에이라 (1939-2009)대통령은 안수마느 마네(1940-2000)군대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이웃 나라 세네갈의 반군에 무기를 공급했다고 비난하며 해임했다.
세네갈 주민은 기니비사우 주민과 매우 가까운 종족이었다. 급여와 근무조건에 오랫동안 불만을 품었던 많은 병사들이 마네를 지지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수도 비사우에서부터 시작하여 나라의 여러 지역을 공격했다.
그러나 비에이라에 불만을 품은 자들은 병사들뿐만이 아니었다. 비에이라는 1980년에 군대 합동참모본부 의장으로서 쿠데타를 주도했고 1994년 자유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뒤 시장을 개혁하고 복수 정당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조치를 실행했으나, 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인 정권이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했다.
폭동 이후, 비에이라의 요청을 받은 세네갈과 기니는 병력을 파견하여 여전히 비에이라에 충성하는 병사들을 지원했지만, 전투가 여러 달 동안 사납게 몰아치면서 수십만 명이 피살되거나 집에서 내쫓겼다. 포르투칼어사용국공동체의 중재로 교전이 중단되고 휴전이 발효됐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1999년 5월 마네의 군대가 비에이라를 축출하고 과도정부를 수립하면서 마침내 전투가 종결됐다. 1999년 말과 2000년 1월에 국제사회의 감독과 국제연합 UN의 후원을 받아 치러진 선거에서 순조롭게 권력이 이양되어 쿰바 얄라(1953~)대통령이 정부를 이끌었다.
11월 말 마네가 쿠데타를 시도 하면서 정부군에 살해됐다. 기니비사우가 민주주의와 평화를 정착해가는 과정에는 다른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2003년 9월 쿠데타로 얄라 정권이 무너졌으며 약 1년 뒤에는 짧은 기간에 끝났지만 군에서 폭동이 일어나 참모총장이 살해됐다. 2005년 중반 대통령 선거를 치를 무렵, 세계 최빈국의 하나이자 기본적으로 농업 국가였던 기니비사우는 외국의 식량 원조에 크게 의존했으며 전쟁으로 폐허가 된 기반시설을 완전히 복구하지 못했다.
비에이라는 6년간의 포르투갈 망명 생활 끝에 귀국하여 2005년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안정과 국민통합을 달성하려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