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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연합군 베르킨게토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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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연합군 베르킨게토릭스

 

 

갈리아 인 지도자 베르킨게토릭스는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지배하는 데 유일하게 위협이 된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 중남부 인 지금의 오베르뉴 아르베르니 부족 출신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귀족이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왕이 되려다가 정적들에게 암살당한 아버지로부터 야망을 물려받았는지도 모른다. 

 

 

 카이사르의 원정 초기만 해도 베르킨게토릭스는 로마 인에 대항하여 지역 부족들을 단합 해야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계획을 실행할 용기를 준 것은 기원전 52년 1월 케나붐에서 일어난 카르누테스 부족의 반란이었다. 당시 베르킨게토릭스는 20대 초반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키가 크고 잘생긴 외모에 불같은 성격을 지녔다고 전한다. 

 

그시대에 발행된 동전에 그와 비슷한 남자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머리는 길고 곱슬곱슬하며 아래로 늘어진 콧수염에 뚜렸한 눈매를 지닌 모습이다. 

 

갈리아 전쟁 이전에는 베르킨게토릭스가 특별히 지도력이나 정치적 기량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러나 그가 비범한 매력을 지녔다는 묘사를 고대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귀족과 농민을 비롯하여 수천 명이 그를 따랐으며, 농민 대다수가 그의 말레 따라 쟁기를 칼로 바꾸어 들었다. 

 

카이사르의 로마군이 게르고비아에서 큰 패배를 당한 후, 카이사르조차 그에게 크게 감탄했다. 카이사르 (갈리아 원정기)에 그가 '무한한 정열을 지녔으며, 강철처럼 엄격한 기강으로 우유부단한 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인물'이라고 기록했다. 

 

알레시아에서 패배한 베르킨게토릭스는 성 안에 함께 남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희생해서 그들의 목숨을 구해 주겠다고 말했다. "나를 죽이는 것이 득이 된다면 그렇게 하라. 또는 나를 로마에 넘기는 것이 낫다면 그렇게 하라." 사람들이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자 베르킨게토릭스는 말을 타고 천천히 카이사르의 진영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카이사르와 장교들 주위를 여섯 번 돈다음 칼과 창을 바닥에 던지고 로마 인 지휘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로마로 끌려간 베르킨게토릭스는 기원전 46년 카이사르의 개선식이 진행되는 동안 대중 앞에 전시되었다가 교살 되었다. 

 

베르킨게토릭스의 명성은 후대로 이어졌다. 1865년에 그의 동상을 세운 나폴레옹 3세부터 드골에 이르기까지, 그는 애국주의자들의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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