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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넬슨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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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넬슨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

 

 

도고 헤이하치로는 대양을 항해한 해군 중 가장 뛰어난 전략가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뛰어난 전략은 일본이 군사 강국으로 떠오르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도고는 일본이 서구에 의해 완전히 망가지고 있던 시절인 1848년에 일본 남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봉건 영주였던 사무라이 전사 '다이묘'였으나, 이런 봉건적인 생활 방식은 1853년 미국 제독 매튜 페리의 일본 방문 이후 급속히 사라진다. 

 

 

그로부터 10년 후 도고가 열다섯 살 때, 영국 전함이 그의 고향 근처에 있는 가고시마 항에 들어왔다. 전함은 일본이 영국 시민을 살해한데 대한 보복으로 6시간 동안 무자비하게 포격을 퍼부어 도시를 망가뜨렸다. 

일본은 그때 처음으로 현대식 대포를 장착한 증기 전함의 힘을 목격했다. 이후 도고는 초라한 일본 해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1871년, 다른 젊은 장교들과 함께 영국으로 훈련을 받으러가 템스 항해술 훈련 대학을 2등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전 세계를 횡단하는 영국 왕립 해군 함선에 탑승해 여러 가지 훈련을 받았다. 

도고는 많은 것을 배웠지만, 병으로 시력을 거의 잃을 위기에서 영국의 의술 덕분에 가까스로 시력을 찾았다. 이 시기에 도고는 트라팔가르에서의 대담한 전략으로 해상 전법을 새롭게 쓴 위대한 제독 호레이쇼 넬슨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일본 해군은 영국에서 배를 사들여 점점 강해졌고, 본국으로 돌아온 도고는 일본 해군에서 계속 진급했다. 그는 청일 전쟁 때 훨씬 규모가 큰 중국 함대를 물리쳐 자신은 물론 일본 전체의 자신감을 드높였다. 러시아-일본 전쟁 직전 도고가 사령관이 되었을 때 , 일본 해군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해군 중 하나였다. 

 

그러나 도고는 이 기세를 타서 해상에서 어느 나라의 해군보다도 우세한 기동력을 갖추도록 훈련할 것을 주장했다. 

일본 함대 최고 사령관으로서 도고는 병사들의 크나큰 존경을 받았다. 작고 술통 같은 체격을 지닌 도고가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몸과 마음을 다한다는 사실을 병사들은 잘 알고 있었다. 

 

러시아군이 쓰시마에서 항복하고 백기를 올렸을 때에도 도고는 마지못해 포격을 중단했다. 이 승리 이후 기자들은 그에게 '동양의 넬슨'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도고는 이 별명을 사양했으나, 사실 그에게 딱 맞는 것이었다. 

 

도고는 강력한 함대를 상대로 과감성, 기동성, 용맹함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아마 넬슨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도고는 1934년 86세의 나이로 일본인의 존경을 받으며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제 2차 세계 대전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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