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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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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정사에서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으로 부터 노태우 대통령 취임까지의 시기를 우리는 5공화국이라 한다. 사실 전두환은 1980년 9월 1일에 이미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나, 이건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은 것이고, 이른바 체육관 선거 시즌 투로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이 제5공화국의 시작이라 할수있다. 물론 체육관 선거 시즌 1과 시즌2의 대통령은 동일 인물이다. 1981년 3월 3일부터 1988년 2월 24일까지 2550일간 지속되었던 독재 시대 .분명히 시대상으로는 경제 발전과 물가 안정으로 인한 생활수준의 향상과 기술 발전 등의 엄청난 혜택이 있었던 시대였지만 , 그 전보다 더 악랄하고 듣도보도 못했던 사건들이 일어났던 아이러니한 시대였다. 평화의 댐과 코렁탕 그리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의 온갖 막장 행태를 부리다 못해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고삐 풀렸던 독재 정치는 막을 내렸다. 이것이 평화의 상징인 1988 서울 올림픽이 열리는 국가의 불과 몇년전 모습이었고, 베이징에서는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이 열리기 바로 1년전에 천안문 6.4 항쟁이 터졌고 그마저도 중국은 탱크로 진압 했다. 엄밀히 말해 앞서 언급된 것처럼 1981년 3월부터 1988년 2월까지를 의미하는 용어이지만,일반인들은 10.26사건 이후 전두환이 신군부를 조직해 대통령급의 권력을 장악한 1979년 12.12군사바란 직후를 포함하여 표현하는 경우도 많았다. 전두환을 상징하는 12.12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항쟁, 삼청교육대 등의 굵직한 사건은 사실 제4공화국 시기에 일어났다. '제n공화국'을 학술적으로 구별하는 기준은 국가체제가 변화할 정도의 중대한 헌법 변경이 이루어졌는지의 여부인데, 이것이'대통령'을 기준으로 놓고 정부를 구분하는 일반인의 시선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자나 정치인의 경우 '삼청교육대'를 개헌전에 삼청교육대가 조직되었으니 이는 4공 시기 사건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전두환이 삼청교육대를 만들었으니 이는 5공시기 사건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시제로 5공 시절에 전두환이 삼청교육대를 만들어다 싹 다 잡아들였다라는 인식은 듣기 어렵지 않다. 드라마가 이런 오해를 가중 시키기도 했다. 

 

 

당시 시대적 특징으로도 미국과의 관계는 겉보기에 로널드 레이건이 한미동매을 굳건히 강조하는 등 관계가 끈끈 했으나, 미국 내에서는 전두환 정권을 향한 비판이 계속되었다.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서는 김대중이 귀국할때 그를 걱정해 따라온 미국 정치 인사들과 안기부 요원들 사이에 몸싸움마저 있었다. 미국 정계 인사들이 김대중과 동행한 이유는 바로 전 해에 비슷한 경로로 귀국했던 필리핀 정객 아키노가 공항에서 마르코스에 의해 암살되었기 때문에 김대중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한국 경찰과 안기부 요원이 김대중을 데려간답시고 미국 인사들에게까지 무력을 행사한데 대해 미국 내부적으로 매우 언짢아 했을 뿐만 아니라 엘살바도르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로버트 화이츠는 "한국 경찰이 저모양인데, 3년 후에 미국인들이 안심하고 서울 거리를 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는 말까지 하며 전두환 정권을 무안의 극치로 몰아 넣었다. 안 그래도 5.18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전세계에서 비난을 퍼붓던 시기 였다. 중국도 천안문 사태 때문에 국제 사회의 온갖 비난과 제재를 받아야만 했다. 

제 5공화국 헌법은 1980년 10월22일 국민투표를 거쳐 10월 27일 개정 되었고 현행 제 6공화국 헌법은 1987년10월29일 개정되었다. 제2공화국 다음으로 가장 짧은 체제 전두환이 투표 직전에 대놓고 "기권은 반대보다 더 나쁘다!"고 극언을 했던 까닭에 투표장에 환자가 앰뷸런스를 타고 나타나서 투표를 하고 간것이 대서특필되었던 미담 아닌 미담이 있다. 다만 국민 눈치를 아예 안본 것은 아니어서 유신체제처럼 가지 않고 대통령은 무조건 단임으로 하기로 했다. 전임 독재자들인 이승만,박정희가 자신들의 임기를 무리하게 연장하면서 연임하다가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은 것을 고려했을 것이며, 이에 본인의 임기는 단임으로 하되 후술하듯이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는 사람을 다음 대통령으로 내세워 이른바 '상왕'처럼 군림하려는 꾀를 냈다. 원안에서는 대통령 단임이란 점을 누누히 강조했다. 그리고 강제로라도 약속은 지켜서 임기가 끝나자 마자 조용히 물러났다. 사실 전두환은 내각제로 바꿔서 수상도 해볼까 고려했고 후엔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으로 막후 실세 사실상의 대통령 노릇을 하려고 했지만 후임인 친구가 뒤통수를 쳤다. 결국 전두환은 백담사로 갔다가, 김영삼이 당선되자 노태우와 감옥행을 갔다.이해 하기 쉽게 인물과 인물간에 대립과 그시대적 상화을 합번에 이해하려면 mbc에서 만든 제5공화국을 보면 될것같다. 한국 현대사 중에서 가장 민감한 소재 중 하나인 박정희 암살(10.26)직후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과 제5공화국 설립, 그리고 6.29선언과 제6공화국 출범까지를 다루고 , 마지막회에서는 5공 청문회와 문민정부에서의 전두환, 노태우 구속까지 간략하게나마 다루고 있다.처음에는 50부작으로 제작할 계획이었다고 하나 어느샌가 41부작으로 축소되었고 시기상으로 본격적으로 전두환이 집권할 시기부터 전개가 빨라지는 것이 보인다. 당시에 살아있던 실존인물들을 이름 그대로 쓰며 방송해 눈치도 보였고, 또 전두환 미화논란도 있었기 때문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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