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로운 적수 다리우스 3세
다리우스 3세는 마케도니아의 영웅 알렉산드로스와 공통점이 대단히 많았다. 그 역시 배신이 난무하는 왕궁에서 자랐다. 다리우스는 기원전 380년에 태어났으며, 본명은 코도마누스였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주역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의 직계 자손은 아니었으며, 먼 친척쯤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왕실 환관 바고아스가 아르타크세르크세스3세와 그의 아들 아르세스를 살해한 뒤, 꼭두각시로 앉힐 통치자를 찾다가 발견한 사람이 코도마누스였다. 바고아스는 알렉산드로스가 권좌에 앉은 해인 기원전 336년에 코도마누스를
다리우스3세'라는 이름으로 왕위에 앉혔다. 하지만 다리우스는 조종하기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 바고아스는 결국 그를 독살하기로 했지만, 다리우스는 이를 미리 알아챘다. 그는 바고아스가 가져온 독을 스스로 마시게 하여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몇몇 역사가들은 다리우스가 우유부단하고 비열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리우스는 이수스에서 용맹하게 싸웠고, 알렉산드로스와 직접 싸울 기회를 찾았다. 심지어 전투 중에 두 사람이 만나 싸우다가 다리우스가 알렉산드로스의 허벅지를 찔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만약 사실이었다면 알레산드로스가 후에 전투와 부상에 관한 편지를 쓰며 이 일을 언급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와 평화 조약을 맺으려던 그의 노력은 진격을 멈추지 않는 막강한 군대를 상대하기 위한 절망적인 몸부림이었을 수도 있다.
한편, 그는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 주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다리우스의 가족을 이수스에서 생포하자, 다리우스는 그들을 되찾기 위해 기꺼이 제국의 절반을 포기하려 했다. 2년 후, 아내가 포로로 잡힌 상태에서 아이를 낳다 사망하자 그는 비탄에 빠졌다.
기원전 330년, 가우가멜라에서 패배하고 동쪽으로 도망치던 다리우스는 전직 페르시아군 사령관이자 사촌인 베수스의 손에 살해당해 길가에 버려졌다. 알레산드로스의 군대가 뒤를 쫓아왔고, 한 마케도니아 병사가 죽어가는 왕에게 다가갔다. 다리우스는 2개의 투창에 찔린 채 마차에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충성스러운 개 1마리만 그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다리우스가 마케도니아 병사의 손을 잡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제 나는 홀로 죽지 않아도 되는구나."그는 곧 숨을 거두었다.
현장에 도착한 알렉산드로스는 망토를 벗어 다리우스의 시체 위에 덮어 주었다. 그런다음 시신을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로 보내 국장을 치르게 했다. 또 베수스를 뒤쫓아 잡아서 매질하고, 국왕 살해에 대한 고대 페르시아 형벌에 따라 귀와 코를 베어 내고 공개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