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그리스의 구원자 테미스토클래스

반응형

 

그리스의 구원자 테미스토클래스

 

 

테미스토클레스는 기원전 525년에 외국인 어머니와 아테네 귀족 가문 출신의 아버지 네오클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외에 테미스토클레스의 어린 시절에 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그는 성인이 되어 한동안 상인으로 일했던 듯하며, 이후 당시 아테네 사회에서 유망한 직업이었던 변호사가 되었다.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플루타르크 같은 역사가들은 테미스토클레스를 활달한 정치적 지도자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는 사교적이고 매력적인 한편으로 인맥을 만들고 이용할 줄 아는 교활한 사람이었다.

 

 

아테네 유명 인사들은 그가 상스럽다고 배안시했다. 성공하기 위해 뇌물을 주고,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하층민과 친분을 다져 그들의 지지로 원로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 당시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군 일부를 이끄는 선출직 장군이었다. 선견지명이 있던 그는 그리스가 마라톤에서는 승리했으나,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끝나 것이 아니라 전초전에 불과하며, 더 큰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국유 은광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아테네 해군을 창설하고, 피레에프스 항구에 요새를 건설했다. 

 

 

아테네의 주요 인사들은 그의 행동에 코웃음 쳤다. 그들은 육군이야말로 영예로운 소명이지만, 해군은 전통적으로 술주정뱅이 오합지졸이 모인 노잡이 정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가 자유 국가로 남으려면 페르시아 해군을 격퇴해야 함을 알았다. 

 

플루타르크의 글에 등장한 테미스토클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수금을 연주 하거나 하프를 탈 줄은 모르지만, 무명의 작은 도시가 어떻게 이름을 떨치는지는 알고 있소." 이는 사실이었다. 그의 뛰어난 전략이 페르시아로부터 그리스를 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장에서 이름을 떨친 많은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테미스토클레스도 평상시에는 뛰어난 지략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원전 476~471년 무렵 패각 추방을 당했다. 또 스파르타인으로부터 배신자라는 선고를 받았으며, 명확한 증거도 없이 그를 페르시아 첩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그는 그리스를 탈출해 페르시아로 가, 그곳에서 새로운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휘하에 들어가 페르시아의 지방 총독이 되었다.

 

그는 기원전 459년,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투키디데스는 그가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말년은 그리 영예롭지 못했으나, 그는 조국을 위기에서 구한 지도자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역사학자 피터 그린은 이렇게 적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지도력 덕분에 아테네 인은 역사상 가장 멋진 시절을 보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