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몰락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1세
크세르크세스 1세는 다리우스 1세의 아들이며, 그 이름은 '영웅을 다스리는 자' 라는 뜻의 그리스 어로 표기한 것이다.
36세에 그리스를 침공한 크세르크세스는 자타가 공인한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다. 그의 비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왕중의 왕이자 수많은 사람이 사는 땅의 왕, 이 넓고 위대한 지상을 다스리는 왕 크세르크세스다.'
헤로도토스 같은 당대 그리스 역사가들은 크세르크세스를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기록을 보면 그는 키가 크고 당당하며 자신만만하고 잘생긴 사람이었다. 진실은 그사이 어디쯤 있지 않을까? 그리스를 침공할 당시 그는 왕위에 오른지 겨우 4년째였으며, 자신감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크세르크세스는 태어날 때부터 주위의 보호를 받으며 호화스럽게 자랐다. 그가 가는 곳마다 미용사와 향수 제조사가 따라다녔다. 심지어 그리스 원정 중에도 그실 자수가 들어간 보라색 망토를 두르고 황금 왕좌에 앉아, 노예들이 가마를 메고 다니게 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악한 세력에 대항해 선이 궁극적으로 승리한다고 믿는 조로아스터교 신자였고 타 종교에 관용을 베풀어 다른 종교인도 그의 통치를 존경했다.
지금은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 침공을 실수라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 당시 관점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스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큰 보탬이 되지 않는 사소한 지역이었으나, 크세르크세스에게는 달랐다. 아버지 다리우스가 당한 마라톤 전투의 패배를 설욕해야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리스를 확보하면 지중해 연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크세르크세스의 삼촌인 아프타바누스같은 참모들은 그의 공격 계획을 듣고 페르시아군의 보급로가 너무 멀어질 것을 지적하며 경고했다. 그러나 왕은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 태어날 때부터 신으로 추앙받았는데, 신이 어찌 패배를 한단 말인가!
그리스에 패배한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세폴리스의 궁전으로 돌아와 15년을 더 통치했다. 그러나 그는 암살당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는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음모로 보이지만, 진실은 역사에 묻혔다.
크세르크세스는 시적인 영감을 가진 감수성 풍부한 사람이기도 했다. 헤로도토스는 크세르크세스가 헬레스폰투스 해안가에 서서 자신이 이룩한 업적 중 하나인 '물살이 거센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기록했다.
"문득 인간의 삶이 슬프도록 짧다는 생각이 드는군, 여기 있는 수천 명 중에서 100년 후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테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