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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의 관상 외모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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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의 관상 외모에 대해서 알아보자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외모는 어땟을까? 다행히 태조 어진이 남아 있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왕들의 어진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 있는 것이 몇 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전주시 경기전의 어진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이 어진은 태조 생존 당시에 제작된 것을 모사한 것이다. 태조 어진은 태종 대와 고종 대에 각각 한 번씩 모사되었다.

 

 

조선의 초상화는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그 때문에 천연두 자국까지 매우 상세하게 표현되었다. 어진 역시 이런 화법으로 그려져 묘사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태조의 어진이 언제 그려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어진에 묘사된 이성계의 모습으로 봐서 60대 이후일 것으로 추측된다. 태조 어진 속의 이성계는 머리카락과 수염이 모두 희고 주름살도 선명한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진 속에 표현된 이성계는 다소 풍채가 있고, 콧대는 높고 콧방울은 뚜렸하나 콧방울은 작은 편이다. 그리고 귀는 크고, 특히 귓볼이 매우 넓다. 하지만 눈은 다소 작은 편이며, 입은 크지 않으며, 입술은 두껍지 않다. 이는 전체적으로 넉넉한 풍채에 너그러운 인상을 준다. 

 

이런 어진의 모습은 (동각잡기)의 "높은 코에 용의 얼굴"이라는 표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용의 얼굴은 눈이 크고 형형하며 눈썹이 짙고 콧방울이 큰 것이 특징인데, 태조 어진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기 때문이다. (용비어천가)에서는 태조의 외모에 대해 "키는 커서 우뚝하고 곧으며 귀가 큰 것이 특별히 달랐다"고 했는데, 아마 이 표현이 사실에 가까울 것 같다. 특히 귀가 큰 것은 확실하게 드러난다.

명나라 사신으로 온 왕태라는 인물은 고려 왕조 시절의 이성계를 만나보고는 "기이하다. 귀여 , 고금에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하면서 그의 귀를 찬양하며 부러워했다 한다. 

 

대개 관상학에서는 귀가 크고 귓볼이 넓으면 성격이 너그럽고 남의 말을 경청해서 들을줄 알며 겸손한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 판단하는데, 이런 관상학적 관점과 이성계의 인품은 일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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